수제맥주업계에 삭풍이 불고 있다. 주 소비층이던 Z세대 음주 취향이 위스키와 하이볼 등으로 옮겨 간 데다 일본산 맥주의 거센 공세까지 겹치면서 수제맥주 수요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 여파로 업계 1, 2위 회사도 적자 수렁에 빠졌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수제맥주업계 1호 상장사인 제주맥주는 지난해 매출 224억원, 영업손실 109억원을 냈다.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영업손실 규모가 100억원을 넘었다. 매출은 전년 대비 6.2% 감소했다. 제주맥주는 2021년 5월 코스닥시장 입성 당시 2023년 매출을 1148억원, 영업이익은 219억원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작년 매출은 예상치의 19.5%에 불과했다. 제주맥주 주가는 공모가(3200원) 대비 3분의 1토막 났다.
제주맥주는 작년 6월 ‘곰표’ 상표권을 소유한 대한제분과 손잡고 히트 상품인 ‘곰표밀맥주’를 재출시했다. 곰표밀맥주는 2020년 6월 출시 이후 3년 만에 누적 판매량 5800만 캔을 돌파한 스테디셀러다. 제주맥주 측은 “안정적인 매출원을 확보하게 됐다”고 했지만 전체 실적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제주맥주는 작년 하반기 직원 40%가량을 감원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코로나19 시기 급성장한 수제맥주 수요는 최근 급격히 줄고 있다. 올 들어 지난 26일까지 편의점 업체 A사의 수제맥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6% 줄었다. 작년 한 해 매출은 2022년보다 15.9% 감소했다. 수제맥주 판매량이 줄자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제주맥주, 세븐브로이맥주 수제맥주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중단했다.
곰표밀맥주의 원래 제조사인 세븐브로이맥주도 지난해 수십억원대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했다. 작년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39억원이었다. 3분기 누적 매출은 10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2% 급감했다. 수제맥주 소비가 급감한 상황에서 주력 제품이었던 곰표밀맥주 상표권을 제주맥주에 빼앗긴 여파가 컸다.
코스닥 상장을 준비했던 세븐브로이맥주는 실적 부진으로 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난달 중소기업 전용 증권시장인 코넥스에 상장했다. 27일 세븐브로이맥주 주가는 2940원에 마감했다. 상장 첫날 시초가(6420원) 대비 54% 넘게 내린 가격이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보다 규모가 작은 160여 개 수제맥주 영세 양조장은 줄폐업 위기에 놓여 있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