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온돌'에 뭉칫돈…빌 게이츠도 베팅한 미래기술의 정체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입력 2024-02-26 15:27
수정 2024-02-26 15:58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선적 컨테이너 크기만한 초대형 토스터가 1510℃까지 달아올라 철강을 만든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이코노미스트 등이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열 배터리 투자 열풍에 대해 이 같이 보도했다. 철강 시멘트 화학 등 제조 공정에 고열이 필요한 산업군에서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고도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방안으로 열 배터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의 온돌처럼 저장 매체(축열재)를 가열해 열에너지를 저장한 뒤 열이 필요할 때 방출하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의 일종이다. 최대 100시간 내외로 고온을 유지할 수 있다.

중공업 분야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0%를 차지해 기후 위기의 주범으로 꼽혀왔지만, 화석연료를 대신할 만한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전기만으로는 고열을 방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전기로 만든 그린수소가 차세대 연료로 주목받은 것도 잠시 높은 비용 등으로 개발이 더뎌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블랙록, 빌 게이츠의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 넥스트에라 에너지 등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기후기술 스타트업 안토라 에너지에 1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2018년 설립된 안토라 에너지는 친환경 전기로 고체 탄소를 가열해 열에너지를 저장해두는 기술을 개발해 작년 하반기부터 상업화에 성공했다.

열에너지가 필요할 때는 토스터 코일이나 전기 스토브처럼 가열된 고체 탄소에서 나오는 빛을 이용해 열에너지를 방출하는 방식이다. 앤드루 포넥 안토라 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고체 탄소는 열을 더욱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고, 뜨거워질수록 에너지 저장 능력이 더 좋아진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토라 에너지의 제품군에는 열에너지와 전기 에너지를 유연하게 공급할 수 있는 연간 2메가와트 규모의 열광발전 전지도 포함돼 있다.

론도 에너지는 점토 벽돌을 축열재로 사용하는 설립 5년차 실리콘밸리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사우디 아람코, 리오 틴토 등으로부터 6000만달러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주의 한 바이오연료(에탄올) 공장에 열배터리를 판매했다. 또한 태국 시멘트와 손잡고 메가팩토리를 세우고 있다. 론도 에너지의 존 오도넬 CEO는 "우리는 산업군의 폭발적인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미친듯이 회사를 키워왔다"고 말했다.



2026년부터 유럽연합(EU)이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따라 탄소배출에 부과되는 비용이 비싸지면 열배터리의 몸값은 더욱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태양빛이 작열하는 한낮이나 바람이 세차게 불 때 값싼 친환경 전기를 열배터리로 저장해두는 기술은 전력망 수급 측면에서도 매우 효율적"이라며 "화석연료 가격의 변동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고 전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마켓 인사이츠는 2022년 360억달러였던 열배터리 시장 규모가 10년 안에 915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관측했다. WSJ는 "최근 몇년 사이에 태양광 풍력 전기가 저렴해진 덕분에 열배터리 가격이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열과 경쟁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더 다양한 원자재를 사용해 열배터리 제조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본 투자자들의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