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만 해도 제이크 냅(30·미국)은 무명 골퍼였다. 캐나다투어와 미국프로골프(PGA) 2부 리그인 콘페리투어에서 뛰며 생계유지를 위해 밤에는 나이트클럽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꿈의 무대’ PGA투어를 향한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오른쪽 팔에 ‘LTD(Living The Dream: 꿈을 좇으며 살자)’라는 문구를 새겨넣었다.
그리고 결국 꿈을 이뤘다. 냅은 26일(한국시간) PGA투어 멕시코오픈(총상금 810만달러)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PGA투어 출전 아홉 번째, 올해 출전한 다섯 번째 대회에서 만들어낸 우승이다. “클럽 경비원으론 돌아가지 않아”
냅은 이날 멕시코 바야르타의 비단타바야르타GC(파71)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와 보기 각각 2개로 이븐파를 쳤다. 최종 합계 19언더파 265타로 사미 발리마키(26·핀란드)를 2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앞서 출전한 여덟 번의 PGA투어 대회에서 네 번의 커트 탈락을 겪은 끝에 얻은 쾌거다. 최고 순위는 지난달 파머스인슈어런스오픈에서 거둔 공동 3위였다.
냅은 올 시즌 PGA투어에 데뷔한 루키다. 명문대인 UCLA 선수 출신으로, PGA투어 입성까지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 2016년 프로로 전향한 그는 캐나다투어에서 3번 우승했지만 콘페리투어에서는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그의 세계랭킹은 1476위에 그쳤다.
냅은 PGA투어에서 활동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나이트클럽 경비원으로 일했다. 종종 결혼식 경비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주말 밤 1시에 클럽에 서 있으면 골프를 생업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깨달을 수 있다”며 “그때의 기억은 나에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투지를 심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의 경험 덕분에 멘털이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이 같은 고군분투 끝에 냅은 작년 콘페리투어에서 포인트 13위로 올라서며 올 시즌 PGA투어 카드를 따냈다.
할아버지의 지원도 그에게 큰 힘이 됐다. 그의 할아버지 고든 시드니 프레드릭 볼리가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냅은 왼쪽 팔뚝에 ‘GSFB’라는 이니셜을 새겼다. 그리고 지금도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할아버지의 휴대폰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남긴다고 했다. 그는 “저녁식사, 운동 등 평범한 일상을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하듯 문자로 남긴다”고 말했다. 2년 시드·마스터스 출전권 따내이날 냅은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3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친 냅은 4타 차 선두로 여유 있게 최종 라운드에 나섰지만 긴장감 탓인지 티샷이 흔들렸다. 13개 홀 가운데 2개 홀에서만 페어웨이를 지켰다.
12번홀까지 1타를 잃으면서 발리마키에게 공동선두를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13번홀(파3)에서 승부를 갈랐다. 발리마키는 티샷을 벙커에 빠뜨리며 보기를 범했지만 냅은 버디를 잡아내며 2타 차로 달아났고 마지막 홀까지 선두를 지켰다.
PGA투어에 따르면 1993년 이후 최종 라운드에서 페어웨이를 2번 이하로 지키고도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냅이 처음이다.
이날 우승으로 냅은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우승상금 145만8000달러(약 19억4000만원)와 함께 2년간의 PGA투어 카드를 확보했다. 여기에 올 시즌 남아있는 특급대회 출전권과 오는 4월 열리는 마스터스대회 출전권도 따냈다.
우승이 확정된 뒤 냅은 “우승컵을 할아버지께 바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 서는 것은 내 꿈이자 할아버지의 꿈이기도 했다”며 “살아계셨다면 ‘우리 우승자, 닭을 먹으며 축하파티를 하자’고 하셨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핀란드인 최초의 PGA투어 우승을 노린 발리마키는 2타를 줄인 끝에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미국 교포 김찬은 공동 8위(12언더파 272타)로 이번 시즌 처음 톱10에 들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