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솔올로. 소나무 숲이 늘어서 솔올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역에 ‘강릉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포부로 문을 연 미술관이 있다. 지난 14일 개관한 솔올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두 마이어파트너스가 맡았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리처드 마이어가 세운 회사다. 솔올미술관은 ‘백색 건축 거장’의 철학을 반영한 듯 하얀색으로 지어졌다. 외벽을 대형 유리로 마감해 채광이 좋았다.
개관전의 주인공은 ‘공간 개념의 창시자’ 루치오 폰타나(1899~1968)였다. 새로운 시설에서 현대미술의 슈퍼스타를 끌어들인다는 이야기는 미술계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국내에서 폰타나 작품으로 전시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시작이었지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앞으로의 운영이 걱정이라는 얘기다.
연덕호 마이어파트너스 대표는 솔올미술관 개관전 오프닝에서 “이번 미술관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철학은 미니멀리즘이었다”며 “건축물은 그 내부에 놓인 전시 작품과 주변 조경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첫 번째 원칙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미술관이 단조롭다는 느낌까지 주는 이유다. 하지만 미술관이 주변 조경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마이어 이름값’을 경험하게 된다. 마이어파트너스는 4년 전부터 미술관 디자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첫 전시로 모셔온 작가는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루치오 폰타나. 폰타나는 캔버스 뒤에 ‘다른 3차원의 공간’이 있다고 주장한 작가다. 그의 주장은 ‘공간주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단순히 캔버스 위에 물감을 쌓아 그림을 그리는 대신, 칼로 캔버스를 베어내거나 뚫는 등의 작업을 통해 2차원 평면의 뒷세계를 열어 ‘3차원의 세계’로 확장했다. 이번 전시에도 그의 ‘뚫기’와 ‘베기’ 시리즈 등 루치오 폰타나라고 하면 떠오를 만한 작품들이 나왔다. 모두 폰타나재단의 소장품으로 1947년 폰타나의 ‘공간주의 선언’ 이후 공개된 작품들을 전시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층에 놓인 다섯 점의 설치 작품이다. 폰타나의 대형 설치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아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해 재건했다. 관람객이 미로 안으로 빨려들어가듯 빨간 통로를 통과해야 하는 작품부터 천장 위에 매달린 대형 조명까지, 기존에 선보인 해외 전시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만났다.
폰타나는 건축과 작품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던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솔올미술관 또한 출입구 천장에 폰타나의 네온 작품을 걸었다. 관객이 미술관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폰타나의 작품과 건축의 어우러짐을 이해할 수 있게 기획했다. 전시는 4월 14일까지 이어진다.
솔올미술관은 루치오 폰타나와 리처드 마이어라는 두 거장의 이름을 걸고 아쉬울 것 없이 출범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나온다. 먼저 서울에서 KTX로 두 시간, 강릉역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이상이 소요되는 지역까지 관람객들을 부르기엔 폰타나의 작품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됐다는 의미가 있지만 재건 설치작만으로 관객을 불러모은 것도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주변 환경도 미흡하다. 미술관을 나오면 사방이 전부 공사장이다. 개관일 이후에도 포클레인이 지나다니며 통행을 방해했고 주변은 아파트 공사장이다.
무엇보다 솔올미술관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지속가능성이다. 미술관은 강릉시가 소유한 부지에 아파트 시행사가 공공기여하는 방식으로 세워졌다. 2022년 11월부터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 위탁운영을 맡았다. 두 번째 전시 이후 올해 8월부터 강릉시에 운영권이 이관될 예정이다. 하지만 시는 미술관 운영 방향에 대한 계획을 전혀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비용을 제외하면 미술관 운영 예산도 책정하지 않았다. 전시 계획도 현재 전시에 이어 열리는 아그네스 마틴의 개인전 외에는 예정된 것이 없다. 지난 19일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도 강릉시 관계자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 의문을 샀다.
김석모 솔올미술관 초대 관장은 “강릉시의 추후 운영 방안을 공유받은 바가 전혀 없다”며 “어떻게 운영할 예정인지 알기라도 하고 싶은 답답한 마음”이라고 했다.
강릉=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