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넥스트 스마트폰’을 찾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에 이어 세상 사람들을 끌어모을 새로운 아이템을 남보다 먼저 선점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확장현실(XR) 헤드셋’은 그렇게 수많은 빅테크가 오랜 리서치 끝에 찾은 해답 중 하나다. 스마트폰처럼 휴대할 수 있는 데다 2030년 5078억달러(약 670조원) 규모로 커질 메타버스로 들어가는 ‘관문’이란 점에서다. 그러니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가 하나둘 뛰어들 수밖에.
메타가 작년까지 전 세계의 절반을 장악한 이 시장에 먼저 도전장을 내민 건 스마트폰 최강자 애플이었다. 최근 내놓은 ‘비전 프로’로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구글, 퀄컴과 함께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강자들의 도전에 ‘챔피언’ 메타가 내놓은 대응법은 LG전자와 손잡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메타)와 하드웨어(LG) 등 서로 잘하는 분야가 다른 두 회사의 만남이란 점에서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빅테크 전쟁터 된 XR 헤드셋25일 산업계에 따르면 오는 28일 만나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와 조주완 LG전자 CEO 간 협의 테이블의 메인 메뉴는 XR 헤드셋이다. 내년 상반기 출시할 예정인 프리미엄 헤드셋을 어떻게 만들지, 어떤 서비스를 넣을지, 판매전략을 어떻게 짤지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XR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의 장점을 망라한 기술이다. XR 헤드셋을 쓰면 가상 세계에서 현실과 비슷한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는 메타버스로 들어갈 수 있다. 메타는 이런 XR 헤드셋 사업의 최강자다. 2014년 VR 헤드셋 개발업체 오큘러스를 20억달러에 인수한 뒤 꾸준히 제품을 내놓은 덕분에 2022년 글로벌 시장의 약 70%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저렴한 중국산 제품이 쏟아지고, 일본 소니 등도 참전하면서 점유율이 40%대로 주저앉았다. 지난 2일 애플이 선보인 XR 헤드셋 ‘비전 프로’가 20만 대 넘게 팔린 만큼 점유율은 더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선 메타의 약점으로 하드웨어를 꼽는다. 제품 설계 및 기획은 잘하지만 실제 제조 능력은 없어서다. 작년 10월 내놓은 ‘메타 퀘스트 3’는 ‘무겁다’ ‘어지럽다’ ‘게임 외엔 콘텐츠가 없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삼국지 더욱 치열해진다메타가 LG를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침 LG전자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메타버스 시장을 잡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짜던 중이었다. 두 회사의 역할 분담은 큰 틀에서 ‘하드웨어=LG, 소프트웨어=메타’로 나뉠 전망이다. 스마트 기기의 두뇌로 불리는 운영체제(OS)는 LG전자의 ‘웹OS’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XR 헤드셋에 메타가 개발한 ‘온디바이스 AI’(인터넷 연결 없이 개별 전자기기에서 구현하는 AI)를 적용하는 방안도 협의 대상이다. 온디바이스 AI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중요한 XR 헤드셋의 성능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
산업계에선 XR 기술이 일상생활을 넘어 건설, 의료, 소방 등 산업 현장에도 쓰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XR 기기 시장 규모가 올해 182억달러(약 24조원)에서 2026년 357억달러(약 47조원)로 두 배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시장을 잡기 위해 삼성전자는 구글, 퀄컴과 손잡고 XR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르면 내년부터 ‘XR 3국지’(LG+메타, 삼성+구글, 애플)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회사마다 미래사업으로 힘을 주고 있는 만큼 초기 스마트폰 시장처럼 명운을 건 격전이 벌어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국내 전자업체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IT 기업 간 XR 헤드셋을 둘러싼 양보없는 전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