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최초의 국산 전기차인 베스타EV가 공개됐다. 1회 충전 주행거리가 마라톤 구간 거리(42.195㎞) 수준에 불과했으나, 선수들이 생중계 차량의 매연을 마시면서 뛰지 않아도 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후 전기차는 눈부신 기술 발전을 이뤘고 국내 누적 전기차 보급대수는 56만 대를 넘어섰다. 이런 성장의 밑바탕에는 정부 차원의 과감한 보급정책이 있었다. 핵심 수단은 ‘전기차 보조금’이다.
전기차 구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전기차가 처음 양산되기 시작한 2011년부터 지속해왔다. 보조금 지원 초기에는 차량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액으로 지원해 단순 구매 보조 역할을 했으나, 2018년부터는 차량 성능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이후 환경부는 시장과 국제 동향, 전기차 보급 정책 방향 등을 고려해 매년 초 전기차 보조금 지침을 발표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사용자의 편의성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제작사의 사후관리(AS) 역량, 충전 인프라 확충 노력을 보조금 산정에 반영했다. 업계는 즉시 반응하며 관련 투자를 늘렸다. 보조금이 전기차 산업을 움직인 것이다.
최근 전기차 수요가 다소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간 ‘얼리어답터’가 주로 구매하던 전기차가 실용성을 중시하는 ‘일반 소비자’의 선택까지 받을 수 있어야 수요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와 함께 전기차 환경성도 강조하는 추세다. 유럽연합(EU)은 마모 미세먼지 등 전기차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 규제를 시사하는 한편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 중이다. 프랑스는 전기차 생산·운송 전 과정 탄소배출에 따라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한국의 전기차 보조금 운용 방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주 발표한 2024년 전기차 보조금 지침의 핵심은 ‘성능과 친환경’이다. 합리적 가격의 고성능 전기차로 일반 소비자의 수요를 끌어내고 환경성도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우선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길고 충전 속도가 빠른 차량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하고 1회 충전으로 전국 이동이 어려운 주행거리 400㎞ 미만 차량의 보조금은 대폭 줄였다. 또 에너지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우대해 가벼우면서 성능 좋은 전기차 생산을 유도한다. 차량이 가벼우면 연비와 환경성 측면에서 우수하다. 아울러, 전기차 배터리의 재활용 가치도 반영해 재활용이 어려운 배터리의 환경비용을 보조금 정책에 내재화했다. 경제적 취약계층과 청년(생애 첫 구매), 소상공인에 대한 구매 지원 확대, 그리고 가격 할인에 비례한 인센티브 지급 등 전기차 진입장벽 완화 방안도 포함했다.
내연기관 차량의 전기차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다만 실용성을 중시하는 일반 소비자의 선택, 그리고 친환경성의 ‘허들’을 넘어야 하는 시점이다. 환경부는 성능·친환경 중심의 보조금 정책으로 이 허들을 넘고,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앞당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