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없는’ 금융그룹이 국내 금융산업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삼성생명·화재·카드·증권 등 삼성 금융계열사(삼성금융네트웍스)의 합산 당기순이익이 국내 1위 금융지주사인 KB금융지주를 넘어섰다. 메리츠화재와 증권 ‘투톱’을 내세운 메리츠금융지주는 사상 첫 ‘순이익 2조 클럽’에 가입하면서 5대 금융지주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은행 중심의 국내 금융산업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금융네트웍스에 속한 4개사의 지난해 순이익은 총 4조8705억원을 기록했다. KB금융(4조6319억원)을 넘어섰고, 우리금융(2조5167억원)의 두 배에 가깝다.
삼성금융네트웍스가 순이익으로 KB·신한 등 선두권 금융지주를 제친 것은 2016년 후 처음이다. 당시 기준금리가 연 1%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현재 비은행 금융그룹의 약진은 더욱 돋보인다. 지난해 고금리 수혜로 은행들도 역대급 이익을 냈지만, 생명·화재 등 비은행을 앞세운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으로 보험사 실적이 개선됐고 증권·카드 계열사는 리스크 관리를 통해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삼성생명은 삼성카드·증권 지분을 각각 71.9%, 29.4% 보유하고 있어 연결 실적에 중복으로 반영된다. 이를 제외한 삼성생명 별도 실적으로 계산하면 삼성금융네트웍스의 순이익 합은 4조3581억원이다. 신한금융(4조3680억원)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지난해 순이익은 2조1333억원으로 농협금융(2조2343억원)과 우리금융을 바짝 쫓아갔다.
금융권에선 삼성금융과 메리츠금융이 국내 비은행 업권의 주도권을 틀어쥐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손해보험업계 순이익 1, 2위를 휩쓸었다. 메리츠증권과 삼성증권은 나란히 증권업계 영업이익 1, 2위에 올랐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에 집중돼 있던 수익 구조가 비은행으로 옮겨가는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형교/조미현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