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정보 유출을 이유로 항구에 설치된 중국 기업의 크레인을 모두 교체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사실상 ‘고사(枯死)’ 상태인 한국 크레인 업체들이 부활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미국 내 생산 설비가 없어 당장 보조금 지원 대상에 오르진 않았지만 추후 한국 기업에 입찰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 현대삼호중공업,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 등 항만용 크레인 제작 회사들은 국내외 시장의 크레인 입찰 참여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들 회사는 2019년 총 3021억원 규모의 ‘부산 신항 2-5단계’ 항만 크레인 55기 수주를 따낸 이후 별다른 영업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날 미국 정부의 제재 발표로 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백악관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 근거해 향후 5년간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한 크레인 제조업체 등에 보조금과 투자금 200억달러(약 26조5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발표의 타깃은 중국 크레인 회사들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산 크레인이 미국의 물류 정보를 수집하는 데 쓰이는 ‘트로이 목마’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의심해왔고 이날 사실상 ‘퇴출 명령’을 내렸다. 업계에선 미국 내에서 중국산 크레인 교체 수요가 늘고 추후 입찰에서도 중국 회사들이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한국 기업 중에선 두산에너빌리티의 베트남 법인인 두산비나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이 회사는 베트남과 인도 등 동남아시아에서 항만 크레인을 수주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26기의 크레인을 수주했다. 회사 관계자는 “베트남 법인 역시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수주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중국 업체를 빼면 가격 경쟁력이 나쁘지 않아 상황에 따라 적극적인 수주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삼호중공업 역시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항만 크레인 사업이 포함된 산업 설비 분야의 수주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확보한 물량 정도만 제작해 납품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2022년 465억원이던 크레인 수주액은 지난해 142억원으로 3분의 1토막 났다.
김우섭/김형규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