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정년이 안타까운 또 다른 이유

입력 2024-02-23 18:47
수정 2024-02-24 00:20
미국 명문 사학인 펜실베이니아대는 래리 제임슨 의대 학장을 총장으로 최근 임명했다. 올해 72세인 그는 2011년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학장으로 초빙돼 12년간 봉직했다. 그는 해리슨 내과학 교과서의 책임 편집자로도 활동했다. 시카고에 있는 노스웨스턴대 의대에서 필자의 멘토이자 공동연구자로 10년간 같이 일한 바 있다. 지금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제임슨 총장은 ‘탁월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협업에 대한 진실한 헌신’을 결합한 전략적 비전을 갖춘 리더다.

필자의 20년 선배인 L교수는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 수련받았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에서 45년간 근무하고 3년 전 80세에 은퇴했다. L교수는 70대부터 병원과 학교의 행정업무를 줄이고 본인의 특화된 연구와 진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연구비와 진료업적에 따라 연봉도 조정해서 받았다. 우리나라 의대를 보자. 기초의학교실의 A교수는 학자로서 그동안 학문적인 성취를 이룬 건 물론 다양한 국내외 연구자와 네트워크를 쌓았다. 국책연구사업단장 등을 지내며 거버넌스 경험도 많다. 그런 그가 올해 정년퇴임한다. A교수의 퇴임으로 그의 연구성과와 인적 네트워크, 경험 등 모든 것이 같이 ‘퇴임’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65세가 되면 퇴임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 사례와 같이 연구나 임상을 계속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학장으로서 학교의 훌륭한 연구자를 잃는 셈이라 아쉬운 부분이다. 의대와 대학병원에서는 교육, 연구, 진료 모든 분야에서 인적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년으로 세대 단절이 일어나고 있다. 국가연구비 수주를 봐도 60세 정도 되면 연구비를 신청하지 않는다. 그렇게 연구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는 곧 국가적 손실로, 정년 이후에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후배들에게도 학문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줘야 하고, 후학들은 나이 많은 교수들을 불편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성과가 검증된 교수들이 계속 학문적 성과를 낼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연세의료원은 임상적 성취가 뛰어난 교수는 정년 후 진료 특임교수로 임명해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정년 전이나 다름없이 훌륭히 자신의 책무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연구와 교육 부문에도 특임교수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다양한 특임교수제를 통해 연구나 진료 기회를 제공한다면 정년을 앞둔 교수들의 의욕을 고취할 수 있고, 우리나라 기초 및 임상 분야의 인력 부족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대학의 경쟁력도 높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