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연일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난 데 이어 정부 정책을 ‘성폭행’ ‘매 맞는 아내’ 등에 비유하며 국민과의 거리감을 더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의사회가 22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연 ‘의대 정원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의사들은 격한 반응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 이날 좌훈정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을 향해 “야, 우리가 언제 의대 정원 늘리자고 동의했냐”며 “네 말대로라면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행 해도 된다는 말과 똑같지 않냐”고 비난했다. 박 차관과 나이가 비슷해 말을 놓겠다고 밝힌 그는 “내가 피를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날이 있어도 네 옷을 벗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 말 듣지 않고 이렇게 정책 밀어붙이는 정부야말로 국민을 볼모로 삼은 것 아니냐”며 “환자가 죽으면 정부 때문”이라고 했다.
행사를 주최한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정부 협박은 14만 의사가 벌이는 투쟁을 멈출 수 없다”며 “(투쟁의) D데이는 의대생, 전공의가 정부에 희생당하는 바로 그날”이라고 말했다. 임현선 송파구의사회장은 “낙수과 여자 ‘의새’ 인사드린다”며 박 차관의 최근 발언을 비꼬았다.
박 차관은 최근 브리핑에서 의사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이는 ‘의새’로 들리게끔 잘못 말한 바 있다.
현장 참석자들은 “준비 안 된 의대 증원, 의학 교육 훼손된다” “일방적인 정책 추진, 국민 건강 위협한다” “무계획적 의대 증원, 건보 재정 파탄 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대한의사협회도 비상대책위원회 브리핑을 이끈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의 발언으로 논란을 부추겼다. 주 위원장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해서 이 사태를 벌인 것은 의사가 아니라 정부”라며 “매 맞는 아내가 자식 때문에 가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과 무슨 차이냐”고 말했다.
환자 곁을 떠나는 집단행동을 시작한 대한전공의협의회의 박단 비대위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자신이 출연한 뉴스의 링크를 걸고 “잡아가세요”라고 적었다. 복지부가 업무 미복귀자에 대해 의사면허 정지 등 행정조치에 나서겠다고 압박한 것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태도와 달리 그는 이날 한 방송 인터뷰에서 “(전공의 중에는) 자녀가 있는 선생님도 있고 가장도 있는데, 각오하고 나오는 거니까”라며 눈물을 보였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