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민생토론회에서 내놓은 원전산업 ‘종합 정책 패키지’에는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직전까지 몰린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는 동시에 정부가 바뀌더라도 원전산업을 키워갈 방안이 다수 담겼다. 에너지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기 위해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특별법에 대해 “원전산업 지원 근거를 법제화해 정책의 일관성을 담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원전 제조, 신성장·원천기술 포함
정부는 이날 원전기업의 체력과 생태계를 복원할 정책을 다수 발표했다. 조세특례제한법령상 원전 분야 세액공제 대상을 넓혔다. 현재는 대형 원전은 ‘설계’ 분야만 신성장·원천기술 대상에 포함돼 다수 원전 제조 기업이 세제 혜택에서 제외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정부는 세액공제를 받는 신성장·원천기술에 ‘대형원전 제조기술’을 신규 반영하기로 했다. 현재 세액공제 대상인 소형모듈원전(SMR) 제조기술 범위도 확대된다. 이에 따라 원전 중소기업은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이 12%에서 18%로, 중견기업은 7%에서 10%로 높아진다. 산업부는 세액공제 확대를 통해 올해에만 1조원 이상의 원전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현 정부 임기인 2027년까지 차세대 원전 R&D 분야에 4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동안 원전 해체와 방사성폐기물 관리 등 후행 주기 분야 위주로 투입되던 정부 자금의 물꼬가 미래 연구 분야로 본격 트인다는 의미가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래 원전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해 냉각수를 쓰지 않는 4세대 원전 등의 투자를 크게 늘리겠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융자와 보증을 합쳐 5000억원 수준이던 금융지원도 약 1조원으로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원전 중장기 로드맵 만든다미래 원전산업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SMR을 선도하기 위한 투자도 본격화한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발전 용량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인 300㎿급 이하 원전이다. 작고 모듈화할 수 있고 부지도 유연하게 선정할 수 있어 최근 들어 부상하는 기술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 주요국이 관련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정부는 향후 세계 시장에 내놓을 한국형 i-SMR을 2028년 개발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작년 약 70억원에서 올해 650억원가량으로 아홉 배 이상으로 늘렸다.
반도체처럼 SMR을 수탁 생산하는 파운드리산업 전략도 추진한다. 원전업계는 SMR은 모듈형 제작이 가능해 공장에서 소형 원전을 만들어 수출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올해 시작된 SMR 혁신 제작기술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원자로 제조기술을 갖춘 나라가 몇 안 되는 만큼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부는 창원·경남지역을 ‘글로벌 SMR 클러스터’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2050년까지 원전 정책을 담은 ‘중장기 로드맵’도 올해 만들 계획이다. 중장기 원전 건설·운영 목표와 관련 산업 지원 정책, R&D 및 인력 양성 방안 등이 담긴다. 이런 로드맵 내용은 원전산업지원특별법 제정을 통해 법제화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원전산업은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23조8000억원이던 원전기업 매출은 2021년 21조6000억원으로 감소했지만, 2022년 25조4000억원으로 회복했다. 2017~2021년 5900억원에 그친 원전설비 수출은 현 정부 출범 2년(2022~2023년) 동안 4조100억원으로 증가했다.
박한신/이슬기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