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서울 새 아파트에서도 이른바 ‘마이너스 프리미엄’(분양가보다 낮은 가격)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공급절벽’ 우려를 틈타 시세 수준의 높은 분양가를 책정한 단지가 많았던 데다 지난해 말부터 매수심리가 꺾이자 ‘손절’에 나선 집주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분양=로또’ 공식이 깨지면서 미래가치가 높은 강남 등으로 청약시장 쏠림 현상도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분양 막차 탔는데…‘억대’ 하락
2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동대문구 이문아이파크자이 전용 84㎡ 입주권은 지난달 5일 11억470만원(19층)에 매매됐다. 지난해 11월 공급된 이 단지는 당시 전용 84㎡ 기준 12억599만~14억4026만원에 분양가가 책정됐다. 옵션 등 확장 비용까지 포함하면 분양가보다 최대 3억원가량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이문3구역을 재개발한 이 단지는 분양 당시 787가구 모집에 1만3992명이 몰리는 등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고분양가 논란 등으로 단기 100% 계약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지난 9일 무순위 청약에서 122가구 모집에 729명이 참여했지만, 추가 무순위가 나올 가능성도 남아 있다.
지난해 8월 같은 동대문구에서 분양한 래미안라그란데 역시 지난달 같은 주택형 입주권이 11억원에 손바뀜했다. 지난해 전용 84㎡ 분양가는 10억~11억원 수준이었다. 입주권이 일반 분양물량보다 로열동·로열층인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분양가 수준인 ‘무피’(프리미엄 없음)로 거래되고 있다.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던 단지 상황도 대부분 비슷하다. 지난해 7월 분양한 관악구 신림동서울대벤처타운역 푸르지오 전용 59㎡ 입주권은 지난달 6억8903만원, 이달에는 6억7195만원에 손바뀜했다. 청약 당시 59㎡ 분양가는 6억8530만~7억5230만원 수준이었다. 이 단지는 1순위 청약에서 3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초기 완판(완전 판매)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분양가 상승 우려 등이 부각되면서 한 달 만에 잔여 계약이 완료됐다.
지난해 10월 1순위 청약을 진행한 경기 광명시 트리우스광명 전용 84㎡ 입주권은 지난달 9억3573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같은 주택형 분양가(10억1840만원~11억5380만원)를 1억원가량 밑돈다. 오는 12월 입주 예정인 후분양 아파트로, 아직 미분양을 해소하지 못했다.○매수심리 따라 분양가도 낮아지나수도권 주요 지역에서도 이른바 ‘마피’ ‘무피’거래가 잇따르면서 청약시장도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 아파트 적정 분양가’를 놓고 공사비 인상분을 전가하려는 조합과 아파트 가격 하락세를 점치는 시장 참여자 간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어서다. 지난해만 해도 ‘그래도 지금이 제일 싸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고분양가 단지라도 시차를 두고 분양이 마무리됐다.
전문가들은 공공분양이나 강남 아파트처럼 미래가치가 높거나 안전마진(시세 차익)이 확실한 분양으로 수요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6일 서초구 반포동 메이플자이 1순위 청약은 81가구 모집에 3만5828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 442.3 대 1을 기록했다. 반면 충남 경북 등에서는 청약 참여자가 ‘0’인 단지가 속출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국에 공급된 24개 단지 중 14곳에서 청약 미달 사태가 빚어졌다.
분양가 상한제 단지에서도 옥석 가리기가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 평택에서는 평택브레인시티중흥S클래스, 대광로제비앙그랜드센텀 등 상한제 적용단지가 잇따라 청약에서 쓴맛을 봤다.
2022년 상한제를 적용받았던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역시 분양가와 비슷한 수준에서 무피 거래(전용 46㎡, 7억7500만원)가 이뤄지고 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수도권 공공택지에서도 시세차익 기대가 쉽지 않다”며 “미래가치와 초기 투자비용, 입지 등을 고려했을 때 확실하게 가격이 저렴한 곳으로 수요가 몰릴 것”으로 분석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