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병원 전공의 절반이 환자 곁을 떠나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동참한 것이다. 정부는 진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에게 업무개시를 명령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고발돼 면허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정부와 의료계 간 강대강 대치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브란스 등서 6415명 사직서 제출
보건복지부가 국내 전공의 95%가 근무하는 100개 병원을 조사했더니 소속 전공의 55%인 6415명이 사직서를 냈다. 국내 전공의는 1만3000여 명이다.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지만 1630명이 근무 현장을 이탈했다. 복지부는 한양대병원, 한림대성심병원 등 10곳을 현장점검해 전공의 1630명 중 757명이 출근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이들 중 728명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다. 사태 시작 후 업무개시 명령을 받은 의사는 831명으로 늘었다.
의료인이 업무개시 명령에 불복해 복귀하지 않으면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들은 20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기자를 만난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는 “업무개시·집단행동금지 명령을 받았지만 법적 효력이 없다는 자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개별적인 자유 의지로 사직한 전공의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잘못된 정책에 의사로서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악마화해 비난하고 폭력적인 명령으로 강제 근로를 시키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느냐”고 지적했다. 업무 강도 높아진 펠로·교수들도 동요전공의들은 오는 4월 10일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를 염두에 두고 집단행동 동력을 키워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가 임박하면 정부가 ‘표심’을 의식해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계산에서다.
대학병원 의사 인력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전공의가 대거 이탈하자 임상강사와 전임의(펠로), 교수들도 동요하고 있다. 전국 82개 의료기관 임상강사·전임의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의사가 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선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며 “의사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시작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정부는 물러설 뜻이 없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약 분업, 원격 의료, 의대 증원을 하려고 할 때마다 대규모 파업이 있었고, 정부는 의료계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 역사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국일 중앙사고수습본부 비상대응반장도 “업무개시명령이 이뤄지면 통보 즉시 전공의들이 돌아오길 바란다”며 “행정처분은 (복귀하지 않을 경우) 그 이후에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복지부, 병원 인력 부담 줄이기 총력정부는 병원들이 전공의 없이 2~3주까지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다음달 초부터 ‘의료대란’이 본격화할 것이란 의미다.
복지부는 병원의 인력 부담을 줄이기 위해 권역·전문응급의료센터 등에서 전문의가 진료하면 한시적으로 진료수가를 100% 올리기로 했다. 입원 환자 비상진료 정책지원금도 신설한다.
정부도 전공의 집단행동이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장기전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의료 현장에 남은 의료진이 두 사람, 세 사람 몫의 격무를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며 “이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병증이 가벼운 환자는 대형 병원 대신 병의원을 이용해달라”고 했다.
이지현/오현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