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들이 멀리서 어려운 길을 나서는데 '통보식'으로 수술을 미뤄버리면…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환자들 시간도 중요하잖아요."
20일 오전 9시께 위암에서 폐암으로 전이가 된 40대 조카를 데리고 경남 진주에서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50대 부부는 "수술하기 전에 입원이 필요하다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텐데, 갑자기 당일 수술하고 퇴원하라는 통보받으니 속이 타들어 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들 부부는 수술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던 중, 병원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수술 지연 통보 메시지를 받았다. 기존 전날 입원하기로 한 일정이 미뤄져 하룻밤을 호텔에서 묵고 이날 수술받기로 했으나, 이마저도 1~2시간 지연됐고, 3일간 입원하기로 한 일정이 전면 취소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위급한 환자를 데리고 지방에서부터 온 건데 통보식으로 안 된다고만 하니 답답해서 미치겠다. 우리 같은 환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료진에 왜 수술이 늦어졌냐고 물으니 그냥 '늦어졌으니 기다리세요'라는 말만 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전날 '빅5' 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소속 전공의 1000명 이상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날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업무를 중단한 가운데,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날 오전 찾은 삼성서울병원에는 파업 예고 소식을 접한 환자들이 일찍이 긴 대기 줄을 형성해 혼잡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가운을 입은 의사들 사이에서는 "인턴들 빠지면 어떡할지 걱정했는데 그게 오늘이 됐네" 등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날 마주한 의료진과 환자 민원 접수센터 등에 상황을 묻자 이들 모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앞서 삼성서울병원은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혼란이 가중하지 않도록 수술과 입원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대체인력을 어떻게 배치할지 등을 다각도로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수술 일정과 관련해 수술 지연 및 연기 등으로 인한 환자들의 토로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병원에선 하루 평균 200∼220건의 수술이 진행되는데, 전날에만 해도 10%가량인 20건의 수술이 연기됐다. 이 병원은 이날 약 70건의 수술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상황은 중증 및 위급한 환자들이 다수 속한 암 수술 병동에서 문제가 되고 있었다.
소아암 말기인 초등학교 1학년 아이 부모는 "이 병원을 계속 다니던 사람인데 전날 2주 후에 다시 수술받으러 오라고 통보받았다"며 "뇌 쪽에 문제가 생겨서 암이 커져 버렸는데 수술도 못하고 진통제만 맞았다. 의사한테 이런 일을 항의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수술받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암 환자들도 불안감을 표출했다. 췌장암 수술을 받은 뒤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혈액종양내과를 방문하고 있다는 90세 노인은 "의사 증원한다고 할 때마다 파업 과정을 다 겪은 사람 입장에선 몇 년 동안 더 이래야 하나 싶다"며 "언젠가 증원 문제는 겪어야 할 일이라고 보는데, 이런 식이면 환자들만 불안하다"고 푸념했다.
암 환우를 둔 부모들의 걱정도 더 커진 분위기였다. 백혈병을 앓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아를 데리고 소아청소년과에 찾은 부모는 "전공의들이 시술하는데 항암치료를 하는 전공의가 빠지는 바람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며 "빨리 정상화되어야 하는데 우리 애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여간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한편 복지부는 전날 오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이들 병원의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20일 밝혔다.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했다. 각 병원은 이들이 낸 사직서를 수리하지는 않았다.
복지부가 10개 수련병원 현장을 점검한 결과 총 1091명(19일 오후 10시 기준)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 가운데 737명이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728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29명을 포함하면 총 757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이 발령됐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