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49층짜리 아파트를 짓는 부산 부산진구 범천재개발 조합은 최근 3년 전보다 70% 높은 공사비를 시공사로부터 통보받았다. 주민은 인상된 공사비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반응이지만, 건설사도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사비 급등으로 재건축·재개발 조합과 시공사 간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일반 아파트보다 공사비가 두 배 가까이 높은 초고층 아파트 사업장에선 조합원 간 마찰이 빚어지고 조합과 시공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를 추진하는 단지가 늘어나면서 공사비 갈등이 확산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공사비 70% 인상” 요청에 ‘화들짝’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이달 초 부산진구 ‘범천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투시도) 조합에 공사비를 3년 전보다 72% 증액하는 내용의 요청서를 전달했다. 공사비를 기존 3.3㎡당 539만9000원에서 926만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조합은 증액된 공사비에 반발하고 있지만 현대건설은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 등을 고려하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범천1-1구역은 용적률이 800%(최고 49층)로 이뤄진 만큼 일반 아파트 공사비보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건설업계에선 초고층 재건축 단지가 증가하면서 공사비 갈등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미 공사 원가 급등과 고금리 여파로 공사비가 많이 오른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얘기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고층일수록 골조 공사, 콘크리트 압송 등 공정이 까다로운 데다 기간도 오래 걸린다”며 “서울 한강변과 수도권 1기 신도시 등 초고층 재건축 단지가 증가하면 공사비 문제로 발목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비 우려로 초고층 재개발을 포기하는 단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1지구는 최근 재개발 층수를 두고 조합원 투표를 진행한 결과 50층 미만으로 짓기로 정했다.
건설업계에선 초고층 공사비가 3.3㎡당 최소 1000만원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수주전이 벌어진 부산 범전동 촉진2-1구역은 포스코이앤씨가 3.3㎡당 891만원, 삼성물산이 3.3㎡당 969만원을 제시했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22차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과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착공을 목표로 공사비를 3.3㎡당 1300만원 선에서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주전 한창…높은 공사비 ‘변수’높아진 공사비 때문에 서초구 잠원동·반포동의 인기 재건축 단지조차 시공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시공사 선정에 나선 잠원동 신반포27차는 입찰에 건설사가 참여하지 않아 유찰을 겪었다. 앞서 연 현장설명회에는 삼성물산, HDC현대산업개발, 현대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 DL건설, 호반건설, 금호건설, 대방건설 등이 참여했다. 조합은 3.3㎡당 907만원의 공사비를 제시했는데, 건설사들은 “너무 낮다”는 반응이다.
공사비 갈등 속에서도 서초구 신반포 등 재건축 핵심지를 둘러싼 건설사의 눈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신반포 12차는 일찍이 롯데건설이 수주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인 ‘르엘’을 적용하고 세계적 건축 디자인 회사인 저디(JERDE)와 협업한다는 계획이다. 인근 신반포 16차의 시공권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신경전도 치열하다. 롯데건설뿐만 아니라 삼성물산, 대우건설, SK에코플랜트 등이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에서 시공 중인 단지의 공사비가 오르고 있는 게 수주에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다음달 착공을 앞둔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는 2019년 3.3㎡당 548만원의 공사비를 책정했다. 최근 물가 상승을 고려해 800만원대에서 다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35층인 반포주공 1단지도 공사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49층 이상 재건축 공사비를 조합원이 감당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유오상/심은지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