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레지던트 등 대학병원 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이탈이 본격화하면서 4년 만에 또다시 의사 집단행동이 시작됐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후 의사들의 집단행동 주기가 짧아지는 추세다. 의사들은 2014년과 2020년에도 파업을 통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무산시켰다.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정부가 의료개혁에 실패하면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의대생과 전공의의 행동을 처벌하려고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18일 밝혔다. 정부가 의사 집단행동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리겠다’는 태도로 응수한 것이다. 의협은 오는 25일 전국 각지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이른 시일 안에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정부는 16일 기준 전국 23개 의료기관에서 715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의사들은 2014년과 2020년에도 대규모 파업에 나섰다. 비대면 진료 도입,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개혁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집권 여당은 달랐지만 모든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정부가 국민 생명권이 훼손되는 상황을 버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 파업으로 대학병원이 가동을 줄이자 중증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다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후 정부가 합의에 나서는 역사가 반복됐다. 전·현직 의사단체장들이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며 연일 강경 발언을 이어가는 데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사 반대에 막혀 의료개혁이 미뤄지는 동안 국내 의료 시스템은 ‘티핑포인트(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필수진료 분야 의사가 부족해 마취과 응급의학과 등의 24시간 당직 시스템이 무너지고 전공의·교수들이 격무를 호소하는 게 ‘개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란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사협회는 20년간 파업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무릎 꿇렸다”며 “환자 생명을 볼모로 파업하면 정부 정책쯤은 쉽게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지현/이영애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