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시신 행방불명…증폭되는 美·러 갈등

입력 2024-02-18 18:10
수정 2024-02-1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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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 갑작스레 숨진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시신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방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암살 지시 의혹이 커지고 있다. 나발니의 사망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더욱 악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모친, 영안실 갔지만 시신 못 찾아” 18일 외신 등에 따르면 나발니 측근들은 그가 살해됐으며 러시아 당국이 흔적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신을 넘겨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나발니의 모친 류드밀라 나발나야가 아들이 숨진 교도소 인근 마을 살레하르트의 영안실을 방문했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나발니 측은 당국이 시신을 보여주지 않은 채 ‘돌연사 증후군’이라는 사인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나발니의 모친은 검시가 끝난 뒤에 시신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나발니 대변인인 키라 야르미시는 “나발니가 살해됐으며 푸틴이 직접 그 명령을 내렸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나발니 사망 이틀 전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관계자들이 교도소를 방문해 일부 보안 카메라와 도청 장치 연결을 끊고 해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러 긴장 고조

나발니의 죽음은 미국과 러시아 간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자국 내 정치 탄압을 두고 두 나라가 대치하는 가운데 이번 사망 사건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영토주권 훼손과 인권 유린은 미국이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국제질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안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나발니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푸틴은 우크라이나 등 다른 나라의 국민을 공격할 뿐 아니라 자국민을 상대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나발니의 죽음이 푸틴과 그의 깡패들이 한 어떤 행동에 따른 결과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서방 측 주장에 “용납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다만 나발니 대변인의 주장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나발니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러시아의 공식 발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폭로한 나발니는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사망했다. 혹독한 환경으로 악명 높아 ‘북극의 늑대’로 불리는 곳이다. 나발니는 2011년 설립한 반부패재단을 통해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반정부 운동을 이끌어 ‘푸틴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러, 나발니 추모객 400여 명 체포
세계 곳곳에서는 나발니 추모 열기가 뜨겁다. 러시아 32개 도시에서 나발니 추모 행사가 열렸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도 추모 행사에다 푸틴 대통령을 반대하는 시위까지 진행됐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사망한 이후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모스크바 검찰은 ‘불법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곳곳에 임시로 마련된 나발니 추모 장소에 모여 있던 시민 40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현지 인권단체 OVD인포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번 추모 및 시위가 푸틴 대통령을 막아서기엔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에 실질적으로 남아있던 마지막 정적까지 제거되면서 푸틴 대통령의 권력이 오히려 공고화될 수 있다는 평가다. 스탄틴 소닌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이제 러시아에서는 푸틴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가능할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