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정학 위험에 대처할 '非시장 전략'

입력 2024-02-18 17:51
수정 2024-02-19 00:33
올해는 대만의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여러 나라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다.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미·중 무역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며, 중동과 동유럽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자유무역협정(FTA) 증가가 예고했듯 비교우위와 노동 분업에 기반한 자유무역 체제는 위협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개별 국가 차원에서 자국 이기주의 및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국가 간 갈등도 증가하고 있다.

비시장(non-market) 전략은 제품, 가격, 비용, 생산량 등 시장과 관련하지 않은 요소로 이익을 얻어내는 전략을 말한다. 차별화(differentiation)와 비용우위(cost leadership)로 결정되는 기존 경영전략과 차이가 있다. 흔한 예로 로비를 들 수 있고, 넓게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도 비시장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은 국가 간 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갈등이 발생하면 그 갈등이 얼마나 심해질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른바 센싱(sensing) 역량이다. 갈등이 심각해질 것으로 판단하면 요즘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사용해 해당 국가에 어느 의원이 어떤 규제를 입법하려는지 예측하는 기업도 많다고 한다. 각 선택지의 비용을 산출한 뒤 ESG, 로비, 기부 등 여러 선택지 중 결정하게 된다.

ESG는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 중 하나로 헤징(위험 회피) 전략의 일환이다. 국가 간 갈등이 발생해 진출한 시장에서 상대국 기업에 대한 악감정이 높아질 경우 로비가 증가한다. 불법인 뇌물과 달리 로비는 합법이다. 효과가 강력하기 때문에 단기 정책으로 선호된다. 그러나 로비 역시 정권 교체 가능성, 로비 상대자인 국회의원이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보다 지속 가능성이 좋은 ESG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과정에서 결국 핵심은 센싱 역량이다. 최대한 빨리, 적기에 파악해야 그 후 전략을 결정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 국가마다 역사가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과거 전쟁을 겪었거나, 충돌 상황이 자주 발생했거나 경쟁 관계였던 국가가 있기 마련이다. 평상시에 보도되는 다양한 뉴스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기업도 있고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는 기업도 있다. 그러다가 국가 간 관계가 갈등 양상으로 변화하면 과거의 경험적 선입관은 현재 악감정으로 급속도로 진행된다.

본국과 역사적 관련성이 그다지 높지 않거나 지리적으로 멀어 평상시에 관심도가 낮은 국가와는 갈등이 생겨도 곧 다른 이슈에 묻히는 사례가 많으므로, 이 경우 대치 국면이 국민적 악감정으로 크게 발전할 것인지 그 인과관계를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ESG의 동기는 비즈니스와 인재 확보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따지자면 ESG를 실행한 만큼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를 판단해줄 효율성이 불명확하다. 따라서 오히려 윤리성이나 현지 시장에서 사회적 정당성을 얻어 인재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게 더 달성 가능한 ESG의 결과물이다. 비즈니스에서 ESG의 효율성이 불명확하다는 것은 ESG의 큰 단점이다. 그러므로 ESG의 투입 자원 그 자체보다는 현지의 주요 이해관계자에게 인정받고,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소통은 지속적이어야 한다. 소통 메시지, 슬로건 그리고 이행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이해관계자들에게 각인이 된다. 2024년 모든 기업이 지정학 위험을 잘 헤쳐 나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