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 명절에 가정의 힘을 느낀 사람도 있겠지만, 가족의 분노가 폭발하고 갈등이 드러나며 힘들었던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분노를 표현하는 기질 특성을 결정하는 유전 소인이 있다. 이를 분노 억제형(anger-in)과 분노 표출형(anger-out)으로 분류한다. 분노 억제형은 자신의 분노 감정을 억누르고 부정해 내면화한다. 과거에는 고부갈등에 따른 분노를 삭이는 며느리들이 화병을 많이 호소했다. 분노를 내면화하면 수동적 공격 행동을 하게 되고 스트레스성 질병, 갑상샘질환 같은 자가 면역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삭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분노 표출형은 소리를 지르고, 신체적 공격을 하며, 적대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외부로 발산한다. 분노 표출형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실망스럽거나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따라서 갈등을 해결하거나 건강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표출형 성향 구성원이 포함된 가족의 경우 명절에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화병보다는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하면서 가족 갈등이 증가하는 것으로 봐서 이 유전자의 발현 방식도 문화 시대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닐까?
영화 ‘미나리’의 남자주인공 스티브 연은 올해 ‘성난 사람들’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성난 사람들’은 남녀 주인공이 분노를 표출하다가 시비가 붙어 인생이 꼬이는 블랙코미디다. 남자주인공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도급업자로 가뜩이나 인생이 안 풀려 화난 상태에서 시비를 건 흰색 벤츠 차를 홧김에 추격한다. 반대로 벤츠 차를 탄 여주인공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뼈 빠지게 고생한 덕에 경제적 여유는 있지만, 일에 치이고 무능한 남편과 무시하는 시어머니 밑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분노를 표출한다. 남녀 주인공 각자의 분노는 상대방에게 말도 안 되는 행위지만 각자의 삶에서는 나름 충분히 설명 가능한 감정이다.
다른 사람의 분노를 쉽게 욕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각자 느끼는 분노는 자신의 인생 경험과 인식 체계 안에선 정당한 경과 과정이다. 남이 이해하건 못하건 말이다. 하지만 분노를 표출해 더 어려운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해야 한다. 스티브 연의 수상 소감처럼 이해받지 못하는 분노 표출은 비판과 수치심처럼 외로운 영역이다. 결국 분노는 상대방을 이해하며 연민하고, 상황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다.
조정진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