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현 작가(56)의 ‘붉은 산수’는 강렬하다. 빨강 일색으로 칠해진 낯선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혼재한다.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전통적 동양 산수화의 껍데기 이면에는 서로를 겨누는 포신과 좌초된 군함 등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가 담겨 있다.
1967년생인 이세현은 홍익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술 강사 등을 전전했다. 39세라는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치도록 그림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유럽의 거대한 미술사적 흐름을 마주한 그는 좌절했다. ‘본인만의 색깔’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어설픈 영어로 서양 미술 철학을 읊어대는 자기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다. 대신 겸재 정선 등 조선 대가들의 산수화에서 답을 찾았다. 먹 대신 붉은 안료로 한국의 산천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군 복무 시절 야간투시경으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의 붉은 풍경에서 착안했다. 그를 상징하는 붉은 산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세현의 산수화는 단번에 해외 수집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세계적인 컬렉터 울리 지그가 그의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영국을 찾을 정도였다. 이세현의 붉은 산수를 재조명한 전시가 서울 성수동 갤러리 구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3월 27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