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위기, 번지기 전에 막아라"…칼 빼든 美 규제 당국

입력 2024-02-16 13:25
수정 2024-02-1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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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규제 당국이 은행권이 운영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상품에 칼을 뺴들었다. 조사 기준을 강화할 방침을 밝히며 자본 유지 조건도 엄격하게 적용할 계획이다. 시장에선 지급준비금 기준선도 올라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5잃(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 중앙은행(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 등 규제당국 세 곳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 포트폴리오가 자본금의 3배 이상인 은행을 대상으로 집중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최근 3년 간 상업용 부동산 포트폴리오가 50% 이상 급성장한 은행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규제당국은 이들을 대상으로 정밀조사를 마친 뒤 추후 후속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전직 통화감독관이었던 키스 노레이카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경고단계에 불과하다"며 "승용차 대시보드가 꺼지고, 보닛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면 이를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다. 보닛을 열어 분석하는 일이 급하다"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가 350여개 미국 은행 재무제표를 조사한 결과 미국 규제당국이 정한 가이드라인에 속하는 은행은 총 24곳이었다. 밸리 내셔널 뱅코프, 워싱턴 페더럴 은행, 악소스 파이낸셜 등이다. 대부분이 지역 중소은행으로 이뤄졌다. 자산규모가 100억~1000억달러 사이인 지역은행 22곳은 자본금의 3배에 달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상품을 운용하고 있었다.



부실 기업으로 지목된 은행들은 반발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보유하고 있지만, 성과가 예상보다 좋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아이라 로빈스 밸리 내셔널 뱅코프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에 "규제당국은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브렌트 베어달 워싱턴페더럴은행 CEO는 "부동산 대출 비중이 크지만 대부분 위험도가 낮은 상품들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규제당국이 기준을 강화한 배경엔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가 있다. 부동산 위기가 지역은행으로 번지기 전에 진화하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31일 NYCB는 부동산 대출 부실로 인한 손실을 인식하며 주가가 하루새 37% 급락한 바 있다. 부실화하는 부동산 대출이 악재로 작용했다. NYCB는 두 건의 대출에서 총 1억8500만달러(약 2500억원)를 상각했다고 밝혔다.

NYCB 역시 작년 9월말 기준으로 부동산 상업용 대출 비중이 총자산(1000억달러)의 4배를 넘겼다. 부동산 대출 비중이 과도한 탓에 신용 위험이 커졌다는 비판이다.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단기간에 확장한 데 따른 후유증이다. 대출을 보다 엄격하게 시행했다면 NYCB가 신용 대출을 통해 부동산 시장이 냉각한 시점을 넘겨 위기를 피했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에선 규제당국이 지급준비율을 높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NYCB는 주가가 급락하자 배당금을 삭감하고 상업용 대출에 대한 준비금을 확보했다. 예상보다 발빠른 대처가 이뤄진 배경에 미국 증권감독위원회(OCC)의 압력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규제당국이 직접 시장에 개입해도 부동산 위기가 쉽게 진화되진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어서다. 오피스 빌딩 가치도 급락하는 중이다.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스톤, 부동산 투자업체 브룩필드자산관리 등도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고조되는 모양새다. 부동산 중개업체 트렙에 따르면 2025년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5600억달러에 이른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