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 팔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어요."
MZ(밀레니얼+Z)세대의 성지로 불리는 성수동 일대에서 술집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주류 판매가 허용된 일반음식점 개업 수가 최대를 경신하는 가운데 카페 등 주류 판매가 금지된 휴게음식점 폐업 건수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고물가, 임대료 상승 등의 여파로 음식값이 비싸면서 주류, 음식을 취급하는 곳이 아니면 생존이 어려워진 탓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구매력이 떨어진 MZ세대들이 아낄 때 아끼고 쓸 때 쓰는 경향이 강해진 영향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술 안 파는 휴게음식점 폐업 역대 최고16일 한경닷컴이 행정안전부 지방인허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서울 성수동1·2가에서 폐업한 휴게음식점 수는 73곳으로 역대 최다로 치솟았다. 개업한 일반음식점은 같은 해 327곳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음식점은 크게 주류 판매가 허용되는 일반음식점과 그렇지 않은 휴게음식점으로 나뉜다.
통상적으로 일반음식점이 더 많긴 하지만, 최근 성수동 일대에서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
2018년까지만 하더라도 휴게음식점 폐업 건수가 연간 50곳을 넘은 적이 없는데, 2019년부터는 54곳, 2020년 64곳으로 늘더니 최근에는 70선을 넘어섰다. 반면 휴게음식점 개업점 수는 2019년과 2020년 연간 90곳까지 증가했다가 최근 70곳 중후반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최근에는 문을 여는 곳의 수와 닫는 곳의 수가 비슷해졌다.
일반음식점도 폐업이 최근 연간 200곳 정도로 많아지긴 했으나, 2020년부터 매년 300곳 이상이 문을 열고 있어 개업이 훨씬 많은 모습이다.
개업하는 일반음식점 수는 휴게음식점과 비교해 2019년까지 2배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4배를 웃돌고 있다. 카페 무덤 된 성수동휴게음식점 중 가장 폐업이 두드러진 곳은 커피 전문점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20곳 안팎이었는데 2020년부터 35곳으로 늘더니 2021년 42곳, 2022년 48곳으로 급증했다. 2023년에는 33곳으로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이는 더 망할 곳도 없어질 정도로 업황이 안 좋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커피 전문점은 다른 업종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고 여겨지지만, 단가가 낮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판매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성수동처럼 임대료가 높아진 곳에서는 브랜드 파워가 강한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워진 형국이다.
성수역 바로 앞에는 거리명이 '성수동 카페거리'로 불릴 정도로 커피 전문점이 대거 들어섰으나, 이제는 스타벅스를 빼곤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커피 전문점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비(非)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도 사람이 거의 없거나 문을 닫는 실정이다. 이제 그 자리에는 주류도 판매하는 음식점이나 각종 편집숍이 들어서고 있다.
성수동은 코로나19 사태 후 초호황을 누린 상권 중 하나다. 본래는 지식재산센터나 코워킹스페이스 등이 몰려 있어 젊은 직장인 중심으로 다양한 음식점과 커피 전문점이 대거 들어선 곳이다. 2022년 디올 카페가 들어서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각종 팝업 스토어가 생기면서 MZ들 사이에서 소위 '힙'한 곳으로 여겨지며 인기가 높아졌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임대료는 급상승했다. 상업용 부동산 종합 서비스기업 알스퀘어에 따르면 지난해 성수권역 오피스 실질 임대료는 3.3㎡당 29만 원으로 2021년 21만 1000원에서 2년 만에 37% 뛰었다. 성동구에 따르면 2022년 성동구의 임대료 상승률은 42%로 서울 모든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았다. 성수역과 연무장길 일대의 임대료는 2018년 3.3㎡당 10만원에서 2022년 15만원으로 50% 급등했다.
이러한 이유로 낮에는 인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식 뷔페를 제공하고, 저녁에는 보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주류를 판매하는 형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성수동에서 이렇게 외식업을 하고 있는 김모씨는 "이렇게 해야 남길 수 있다. 몸은 피곤하지만 임대료, 식자재 부담을 감당할 별 방도가 없다"고 호소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성수동은 그래도 인기가 유지되는 곳이지만 임대료가 급증한 곳 중 하나다.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요즘 젊은 층은 고물가로 돈이 없다. 이런저런 비용은 아끼는 대신 친구나 동료들과 한 자리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 수 있는 술집을 선호하는 흐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아낄 때 아끼고 한 번 쓸 때 제대로 쓰는 젊은 층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