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러시아에 맞서는 '발트 3총사'

입력 2024-02-14 17:59
수정 2024-02-15 00:34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러시아의 지명 수배자가 됐다. 러시아 내무부가 외국 정상을 수배자 명단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만이 아니다. 에스토니아 국무부 장관, 리투아니아 문화부 장관과 라트비아의 정치인 60여 명도 포함됐다. 러시아는 이들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옛 소련 군인들의 기념물을 파괴해 “역사적 기록을 모독했다”는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발트 3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조각상과 건축물 등 대부분 소련 유물을 철거했다.

주변 강대국의 각축장이던 발트해 연안 지역은 18세기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세 개의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1940년 다시 소련과 나치 독일의 밀약 속에 점령돼 1991년 독립 승인 때까지 반세기를 소련 치하에서 보냈다. 이 지역에선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반(反)소련 시민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1989년 8월엔 비폭력 평화시위인 ‘발트의 길’이 펼쳐져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여만 명이 에스토니아 탈린부터 라트비아 리가, 리투아니아 빌뉴스까지 675㎞를 인간 띠로 이으며 소련 점령 종식을 요구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이 시위는 ‘발트의 사슬’ ‘자유의 사슬’로도 불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발트 3국은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왔다. 특히 ‘북유럽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칼라스 총리는 푸틴 비판에 앞장섰다. 포탄 100만 발 제공 약속 등 국제사회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주도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녀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발트 3국은 러시아 야욕의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위협이 이들의 저항정신을 쉽게 꺾지는 못할 듯 하다. 졸지에 수배자가 된 칼라스 총리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코웃음을 쳤다. 부디 ‘all for one, one for all(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이라는 NATO의 신조가 이 용감한 ‘발트 3총사’와 함께 하길 바란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