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시장주의 투자" 美 공화당 견제에도 늘어나는 블랙록의 ESG 투자

입력 2024-02-14 13:48
수정 2024-02-1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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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의 정치적 공세에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급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ESG 펀드 최다 순유입액 기록을 매 분기 경신하며 시장 지배력을 확장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펀드조사업체 모닝스타 다이렉트를 인용해 블랙록의 ESG 펀드 운용자산(AUM)이 2022년 초부터 지난해 말까지 53%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ESG 시장은 8% 성장하는 데 그쳤다. 현재 블랙록의 ESG 펀드 자산 규모는 3200억달러에 육박한다.

호텐스 비오이 모닝스타 지속가능성 연구 디렉터는 "최근 5년간 ESG 펀드 중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들인 곳은 블랙록이다"라며 "미국에서 ESG에 대한 반발 심리가 거셌을 때도 블랙록에는 투자금이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공화당은 2020년부터 석유기업 등과 연대해 반(反) ESG 운동을 펼쳐왔다. ESG 투자를 '깨어있는(Woke) 자본주의'라 비난하며 ESG 관련 규제를 확대하려 했다. 지난해에만 미국 전역에서 약 150건의 반 ESG 법안을 발의했다. 뉴햄프셔주에선 정부 기관이 투자 결정 시 ESG 요소를 '고의'로 포함한 의사결정자에 최대 20년 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세계 보험업계의 ESG 연합인 넷째로 보험연맹(NZIA)도 공화당의 공격 대상이 됐다. 공화당이 독점금지법을 명분 삼아 ESG 투자를 '담합'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대변인은 "글로벌 보험사들이 연합체를 구성해 동일한 정책을 지향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담합'이다"라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식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에너지 기업 수익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ESG 투자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금리 수준도 급상승하면서 ESG 투자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지난 1년간 S&P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지수는 28.49% 하락했지만, S&P500 지수는 19.75% 상승했다.



ESG 투자가 위축된 가운데 블랙록은 홀로 성장세를 유지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ESG 펀드에서 50억달러가 유출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 3분기(27억달러)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블랙록의 ESG 펀드는 작년 4분기 47억달러 순 유입을 기록했다.

블랙록이 홀로 성장한 배경엔 기술주 투자가 있다. 친환경 에너지 기업 비중을 늘리는 데 주력하지 않은 결과다. 블랙록은 풍력 발전 및 태양광 발전 기업에 투자하는 대신 '기후 전환' 정책을 펼치는 기업 주식을 대량 매수했다. 주로 엔비디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가 투자 비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블랙록의 최대 ESG 펀드 중 하나인 'ACS 미국 ESG 인사이트 주식 펀드'의 지난 12개월간 수익률은 20.17%를 기록했다. '아이셰어즈 MSCI 미국 ESG ETF' 수익률도 19.4%를 찍었고, ACS 월드 ESG 인사이트 주식 펀드도 15.4%를 기록했다. 세 펀드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기업은 애플과 MS였다.

시장에선 블랙록이 경쟁사에 비해 적용 기준을 완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를 운용하면서 투자 대상 기업을 선별할 때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블랙록의 ESG 펀드 중 85%가 패시브 펀드로 이뤄졌다.

경쟁사들도 블랙록의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인 아문디 SA는 2025년까지 패시브 펀드의 40%를 ESG 펀드로 채울 방침이다. 작년 말까지 패시브 펀드에서 ESG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그쳤다.

비오이 디렉터는 "액티브 펀드 매니저의 경우 ESG 펀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위험한 투자를 감행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가장 쉬운 선택(지수)만으로도 고객들의 수익을 보장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