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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섭 크레스트아시아자산운용 전략 담당/성균관대 MBA 교수 데자뷔 (deja vu)최근 몇 개월간 발표된 미국 거시경제지표들은 일제히 인플레이션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고 고용시장은 탄탄히 유지되는 가운데 가계소비는 예상보다 훨씬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작년 중반까지도 경기침체가 다가오고 있음을 설파하던 전문가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강세론자로 돌아섰고 투자자들은 미국경제의 연착륙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낙관적 전망들을 보면 필자는 강한 기시감이 든다. 세계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007년 중반까지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 주택시장 하락세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낙관하며 미국경제는 2008년에 다시 장기 평균 성장률에 수렴하는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좀 더 멀리 보자면 1929년 10월 주식시장 급락에도 투자자들은 상당히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필자의 기억에도 생생한 2007년 8월 발간된 IMF 보고서는 미국경제의 연착륙을 예측하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미국 주택시장의 하락세는 2006년과 2007년 미국의 성장률을 상당히 끌어내렸으나 2008년 주택건설투자는 장기 평균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주택시장의 하락세와 유가 상승에도 가계소비는 강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8년 가계소비는 성장세가 완만히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나 탄탄한 고용시장, 가계수입의 증가, 그리고 낮은 인플레이션은 가계소비를 뒷받침할 것이다. 셋째, 기업설비투자는 2007년 그전 3년간의 견고한 성장세에서 둔화되었으나 기업의 탄탄한 재무구조와 꾸준한 순익증가를 바탕으로 2008년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넷째, 미국 이외의 경제권이 회복세로 돌아서며 미국의 수출이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이렇게 연착륙을 기본 시나리오로 IMF는 연착륙을 위협할 수 있는 리스크로 주택시장의 하락세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확산 그리고 미국 연방정부 재정적자의 확대를 들었다.
2007년 IMF 보고서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붕괴, 프라이빗 크레디트 마켓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한 리스크로 대체하면 거의 현재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과 같이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지는 과정은 경기가 정점을 지나고 침체국면에 접어들기 전 거치는 경기순환사이클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충분히 제약적이지 않은 연준의 정책지난 6개월 평균 전달 대비 근원 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연율로 환산하면 이미 연준의 2% 기준 아래로 하락하였고 고용시장은 지난 12월과 1월 30만명을 훨씬 웃도는 신규 채용을 기록하며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경기실사지수인 구매관리자지수(PMI)에 따르면 제조업은 꾸준한 하락세에서 회복세로 돌아섰고 서비스업은 다시 성장이 탄력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발표된 경기지표에서는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미국 경기는 오히려 최근 금리하락과 더불어 완화된 금융 여건을 바탕으로 작년 상반기처럼 다시 성장에 탄력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의 하락세는 상품 공급망이 정상화됨에 따라 진행된 상품가격 하락세(Disfinlation)가 주도해왔으나 이제 상품 가격 하락세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서비스 부문에서는 유휴경제력(Economic Slack)이 소진되면서 임금 상승률이 연준의 2% 인플레이션 목표에 부응하는 수준을 휠씬 웃돌고 있다. 연간 1.5% 정도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감안할 때 연준이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임금 상승률이 3.5% 수준을 넘어서지 않아야 하나 아직도 4% 수준을 웃돌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달 고용시장 지표는 임금 상승률이 오히려 재상승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또한 구매관리자지수는 서비스업뿐 아니라 제조업에서도 지불가격이 재차 상승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최근 지표들은 경기가 다시 탄력을 받으며 상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이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경기가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서 작년 지방은행 파산 사태 이후 경직되었던 은행들의 대출태도지수도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은행들이 대출기준을 강화하고 있다고 답했으나 전반적으로는 대출기준을 강화하려는 은행들의 비율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이다.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은행발 신용경색이 점차 개선되고 있어 신용경색에 의한 경기침체 확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과거에는 은행발 신용경색이 시작되면 몇 개월 후에 실업률이 상승하고 경제는 침체국면에 빠지곤 하였으나 작년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사태로 시작된 은행발 신용경색에도 실업률은 근래 최저 수준에 묶여있고 미국경제는 침체국면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경제가 은행신용을 대신할 수 있는 프라이빗 크레디트 등 자본시장 자금조달 메커니즘이 급격히 발전하여 다른 선진경제에 비해 은행신용에 대한 의존도가 대폭 낮아졌다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연준에게는 금리정책의 직접적인 효과가 대폭 감소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정책금리보다는 자본시장의 전반적 금융 여건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미국 자본시장의 금융 여건이 작년 9월 이후 지속적으로 완화되었다는 점은 연준이 채권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금리인하에 성급하게 나서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파월 의장 역시 1월 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3월 금리인하는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치에 근접하고 있다는 지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올해 중반쯤 금리인하에 나설 것임을 강조하였다.
작년 하반기 이후 금융 여건이 의미 있게 완화되었고 뒤이어 경기는 다시 상승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인 가운데 경기과열 위험과 인플레이션 재상승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금융 여건은 정책금리와는 다르게 크게 경기를 제약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이는 주식시장의 단기 과열 분위기와 밸류에이션 버블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어 연준은 금융 여건이 더 이상 완화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금리 수준을 적어도 상반기에는 유지하며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근접하여 안정되는 모습을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기상황을 고려할 때 인플레이션의 전개 방향은 연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연준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플레이션 재상승이라는 리스크가 실제 커지고 있다. 결국 연준은 재차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다거나 적어도 현재의 정책금리 수준을 더 길게 유지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통해 금융 여건을 긴축으로 조정하려 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후자의 시그널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서비스 부문의 유휴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요를 억제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금융 여건이 적어도 완화되지 않도록 하여 경기둔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둔화는 대체적으로 처음에는 서서히 진행되어 경기 연착륙에 대한 기대를 높이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둔화되면 실업률이 급등하고 침체국면에 빠지는 패턴을 보인다. 결국 주식시장의 과열 분위기는 급격히 패닉으로 바뀌고 밸류에이션 버블은 터지게 된다. 또한 4/4분기 뉴욕 커뮤니티 은행의 실적에서 보여졌듯이 상업용 부동산 시장과 다가구 주택시장에서의 잠재 부실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의 금리 수준이 유지되면 잠재 부실채권 문제가 상당수 지방은행의 부실로 이어지며 신용경색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연준과 재무성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늘 그렇듯이 잠재 부실이 현실화하는 경우 부실채권의 규모는 거의 항상 예상을 뛰어넘곤 했다. 이 경우, 거의 완벽한 경기 연착륙 낙관론을 반영하고 있는 주식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이 “골디락스”의 낙관론에 취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을 때 어떤 투자자라도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추격매수로 기대되는 수익은 급락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꺾일 것 같지 않은 경기사이클도 결국 꺾이고 바닥이 없는 것같이 추락하던 경기도 결국 회복세로 전환되는 것이 경기순환 사이클의 과정인 것이다. 필자는 여전히 미국경제와 우리나라의 수출 전망이 모두 경기사이클 후반에 있으며 결국 침체국면으로 진입할 것 같은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