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50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된 이후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논의가 끝난 건 아니라더니 여야 간 협상은 뚝 끊겼다. 확대 시행 닷새 만에 첫 사망 사고를 시작으로 영세사업장의 사고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사고 원인 분석이나 예방이 아니라 사업주가 처벌 대상인지 아닌지에 집중되고 있다. 처벌이 목적인 법이 될 것이란 그동안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일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을 유예하자는 국민의힘 제안을 거부했다. 정부의 사과와 구체적인 지원 방안, 경제단체의 2년 뒤 법 적용 수용 약속 등 요구 외에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라는 조건까지 여당이 받아들였지만 기존의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영세사업주 "살려달라" 하는데민주당 입장에선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 표를 의식한 정치 셈법이 작용했을 것이다. 민주당의 선택이 총선에서 어떻게 귀결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민주당은 노동계 표 이탈을 막았다며 안도하는 모습이다.
안타까운 것은 여야가 적용 유예냐, 즉각 시행이냐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동안 실질적인 재해 감축 방안이나 법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사업주들에게는 그야말로 죽고 사는 문제인데도 통계를 보면 이미 시행 중인 중대재해법 효과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2022년 50인 이상 사업장의 재해사고 사망자는 247명으로 전년보다 1명 줄었다. 지난해 1~3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10명 감소했다. 얼핏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전국의 건설현장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제조업 생산이 외환위기 이후 최대폭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사망 사고는 늘어난 셈이다. 건설업과 제조업은 전체 중대재해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일차적으로는 야당의 정치 셈법으로 중대재해법이 확대 적용됐지만, 실제로는 영세사업주를 제외한 모두가 원한 결과라는 씁쓸한 해석도 있다. 2022년 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법으로 먹고 사는, 나아가 배를 불리는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제발 살려달라”는 영세사업주들은 84만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확대 적용을 내심 바랐다는 것이다. 野는 표계산…법조계는 내심 반겨우선 대형로펌 등 법조계는 중대재해법발 호황을 맞고 있다. 진보·보수 성향을 불문하고 “확대 적용이 미뤄지면 안 되는데…”라는 현직 변호사들의 농담 아닌 농담은 흔한 현실이다. 중대재해 사건을 놓고 변호사와 노무사 간 밥그릇 싸움이 벌어진 지 오래다. 공공부문은 또 어떤가. 법 시행을 앞두고 산재예방 인력과 예산은 두 배 이상 늘었고, 안전보건공단 직원은 700명 넘게 증가했다.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과 공단 퇴직자들의 일자리는 널렸고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산업안전 관련 자격증 시장도 활황이다. 모두 모호한 법과 공포의 산물이다.
지난달 31일 중소기업 대표 3500여 명이 국회에 집결했다. 중소기업중앙회 6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중소기업도 국민이다. 의원님들 현장 한번 와보라”고 호소했다. 사고는 줄이지 못하고 영세기업은 폐업을 걱정하게 하는 법,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에 웃는 자들은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