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 기자
부동산을 알아볼 때 기왕이면 싸고 좋은 집을 찾는 경우가 많죠. 좋은데 왜 쌀까요. 왜 안 팔렸을까요. 사실 '싸고 좋다'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집은 실존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말이죠.
그런데 정부의 주거복지프로그램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많습니다. 지난달 출시된 신생아특례대출을 볼까요. 최근 2년 안에 아이를 낳은 적이 있다면 대출을 조금 더 좋은 조건에 해주겠다는 게 골자인 정책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통해 아파트에 당첨된 이들에겐 그림의 떡 같은 정책이기도 하죠.
젊은 부부가 아파트 당첨되려면 신혼 특공이 가장 쉬운 길입니다. 이땐 아이가 있어야 유리하죠. 그렇게 당첨이 됐다면 계약금과 중도금을 내다가 아파트가 준공될 때 잔금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이때 신생아특례대출을 일으키는 것이죠.
그런데 아파트 한 채를 지을 땐 대개 2년 반~3년가량의 시간이 걸립니다. 신생아특례대출의 조건은 '2년 내 출생'이었는데 아이가 태어난 지 이미 2년이 지나버린 것이죠. 신혼 특공으로 당첨된 젊은 부부가 특례대출 대상이 위해선 당장 아이를 또 낳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대출 프로그램뿐만이 아닙니다. 수도권 공공분양 단지들에서도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 동작구 수방사 사전청약이 딱 이 같은 사례인데요. 청약 자격을 갖추려면 소득기준과 자산요건을 맞춰야 하는데 분양가는 서민들이 꿈꾸기도 힘든 10억으로 책정됐죠.
뫼비우스의 띠, 펜로즈의 계단 같은 꼴입니다. 결혼하면 청약에 유리하대서 결혼했더니 아이를 낳으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낳고 키우다 보니 부부 둘이 합치면 소득기준을 넘어버립니다. 그래서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소득을 맞췄더니 이번엔 집 살 돈이 모자라게 된 것이죠. 열심히 저축하거나 운이 좋아 재테크로 종잣돈을 불리면 어떻게 될까요. 자산기준을 초과해서 청약할 자격이 안 됩니다.
결국 이 같은 제도에선 누가 제일 행복할까요. 집안은 빵빵하지만 서류상으로만 소득과 자산이 없는 계층이죠. 부모가 구해준 전셋집에 살고 있으니 무주택 신분은 유지되고 자산도 잡히지 않습니다. 부모의 소득을 사실상 공유하다 보니 버는 돈이 거의 없는데 삶은 윤택합니다. 아파트에 당첨돼도 부모가 구원투수로 등판하죠.
얼마 전에 청약을 받은 동탄2신도시 C14블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지는 6년 동안 임대로 살다가 분양전환을 선택하는 단지입니다. 일단 임대로 사는 동안 월 100만원씩 내야 하죠. 6년 동안 월세로만 7200만원을 내는 꼴입니다. 보증금까지 합치면 4억원가량이 들죠. 그렇게 6년이 지나면 분양전환 시점의 감정가격과 입주시점의 감정가격을 통해 분양전환가격을 결정합니다. LH의 추정치로 9억원에 육박하죠.
당장 분양받는 게 어려운 서민이 감당 가능한 범위일까요. '대출 받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때의 대출 한도를 결정하는 DTI(총부채상환비율)는 소득에 대비해서 결정됩니다. 소득이 낮다면 그만큼 대출 한도도 줄어드는 것이죠.
서민들에게 집을 공짜로 나눠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뫼비우스의 띠, 펜로즈의 계단을 끊자는 것입니다. 공공분양은 금수저의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서 티켓 자격을 까다롭게 만든 버스입니다. 그렇다면 가격 또한 서민들이 도전 가능한 수준이어야겠죠.
사업 과정에서 비용이 증가해 가격을 절충하기 어렵다면 어차피 분양의 대상은 일반적인 서민이 아닙니다. 그땐 차라리 자격을 조금 풀어서 중산층도 노릴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요. 서민으로 가장한 금수저만의 잔치가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가는 청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합리적으로 당첨자를 선정할 수 있는 정책의 유연함을 기대합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조희재·이문규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이문규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