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값싼 짝퉁차'는 옛말…럭셔리 장착한 BYD '韓 상륙작전'

입력 2024-02-12 18:21
수정 2024-02-20 16:28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6보다 반응성이 좋고, 테슬라 모델 3보다 럭셔리하다.”

작년 말 영국에 입성한 중국 BYD의 중형 전기세단 ‘실(Seal)’을 꼼꼼히 살펴본 영국 자동차 매체 카매거진의 평가다. 중국 제품에 으레 붙던 ‘가성비’란 단어를 ‘럭셔리’가 대신했다. 싱글모터 기준 실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570㎞(영국 정부 인증 기준·19인치)로 모델 3(511㎞)보다 11% 더 길다. 10% 더 큰 배터리 용량(82.5㎾h) 덕분이다. 부드러운 도어캐치와 용도에 따라 180도 회전하는 15.6인치 터치스크린 등도 호평을 받았다.

실은 아토 3, 돌핀과 함께 BYD가 한국 시장에 내놓기 위해 국내에 상표를 출원한 3개 모델 중 하나다. 중국 전기차의 성능과 디자인이 세계시장에서 검증받았다는 점에서 BYD의 한국 공습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계 최대 전기차 왕국’ 만든 중국
중국 전기차가 얼마나 강한지는 경쟁 업체들이 가장 잘 안다. 작년 말 현대차 외부자문위원회가 경영진에게 건넨 ‘만리장성을 넘어 전 세계를 뒤덮는 자동차의 쓰나미’ 보고서는 온통 ‘중국’과 ‘전기차’ 얘기로 도배됐다. 자문위는 “중국 자동차가 만리장성을 넘어 쓰나미처럼 전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며 “현대차를 비롯한 기존 완성차 기업으로선 시장을 빼앗기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중국 전기차는 해외 수출 단계를 넘어 기술·서비스·브랜드·생산 등 가치사슬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내수 시장에서 팔다남은 전기차를 수출하는 게 아니라 해외에 직접 생산·공급망과 연구개발기지를 꾸려 빠르게 현지화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어 “중국 전기차의 상품성은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에 비해 월등하다”며 “현대차가 ‘글로벌 톱 3’라는 성적에 도취된 상황에서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엄청난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전기차의 경쟁력은 “제조 기술력을 기반으로 단순하고 효율적인 생산공정을 갖췄다”(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데서 나온다. BYD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부터 차량용 반도체, 소프트웨어까지 전체 부품의 75%를 자체 생산하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경쟁사 대비 생산 비용을 최대 30% 낮춘 비결이다.

BYD는 차량 본체(보디)와 배터리,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전력 전자장치 등을 하나로 통합한 셀투보디(CTB) 기술도 처음으로 상용화했다. 차체의 강성은 물론 배터리 효율성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어 테슬라도 도입한 기술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속속 선점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해외 시장을 단계별로 공략해왔다. 1단계는 이렇다 할 자동차산업이랄 게 없는 인도네시아 태국 브라질 등 신흥시장. 가격, 품질, 디자인 등 3박자를 갖춘 중국 전기차가 발을 들여놓는 곳마다 시장은 흔들렸다. 현대차와 기아가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그런 나라 중 하나다. BYD가 지난해 판매량을 1년 만에 4배로 늘리며 18위에서 4위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현대차와 기아 판매량은 각각 2%와 14% 줄어들었다.

2단계로 진입한 일본 호주 유럽에서도 중국 전기차 점유율은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상하이자동차 산하 MG는 지난해 상반기 유럽 판매량(10만4300대)을 128% 늘리며 BMW 미니, 폭스바겐 쿠프라를 제쳤다.

BYD는 중국 외 시장 판매량을 2022년 5만5656대에서 지난해 24만2759대로 4배 넘게 늘렸다. 2030년 해외에서만 150만 대를 판다는 목표도 세웠다. 지난해부턴 브라질, 헝가리, 태국, 우즈베키스탄 등에 동시다발적으로 공장도 짓고 있다.

BYD의 한국 전기승용차 시장 진출이 불러올 파장은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승용차는 소비자의 브랜드 민감도가 높은 데다 환경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중국 업체에 불리하게 설계한 만큼 당장은 시장 판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대형 TV 등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 얼마 전까지 한국 소비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하이센스, TCL 등 중국 제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전기차 역시 중국산의 경쟁력이 입증되는 순간 판세가 요동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전기버스 시장의 55%를 하이거버스·BYD·CHTC 등 중국산이 차지했다.

펠리페 무뇨스 제이토다이내믹스 애널리스트는 “불과 몇 년 전에도 소비자가 중국 브랜드 구매를 고려하지 않았던 시장에서 중국차 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며 “정책만으로는 전기차의 경제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중국 브랜드의 침투에 대응하려면 결국 연구개발에 힘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빈난새/김재후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