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30일부터 시행되는 ‘일회용 택배 포장 규제’ 탓에 유통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규제 적용을 두 달 남짓 앞두고 환경부가 기본 가이드라인조차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예정됐던 가이드라인 발표를 두 달 가까이 아무 해명도 없이 미루고 있다.
해당 규제는 ‘과대 포장’을 막기 위해 일회용 택배 포장 용기 안의 빈 공간과 포장 횟수를 제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두 달 안에 이에 맞춰 택배 포장 방식을 바꿔야 하는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 대형 택배사와 쿠팡 컬리 등 e커머스, 식품·화장품사, 소상공인 등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일각에선 환경부가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였다가 결국 철회한 ‘종이빨대 사태’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두 달 뒤 시행…가이드라인도 없어환경부가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 일명 일회용 택배 포장 규제를 발표한 건 2022년 4월이다. 작은 용량의 제품 하나를 시켜도 큰 상자에 포장하는 과대 포장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택배 포장 용적의 빈 공간을 50% 이하로 규제하고, 제품 자체 포장을 제외한 택배 포장 횟수를 한 번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다.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발송하는 모든 택배가 대상이다. 가로·세로·높이 합이 50㎝ 이하인 택배는 예외다. 단 현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법 시행을 2년간 유예하고, 지난해 12월까지 제품 크기·특성별로 세부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법 시행이 두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환경부는 아직까지 택배 포장 규제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기업들에 전달하지 않았다.
특히 밀키트처럼 냉장·냉동이 필요한 가공식품 배송 비중이 높은 e커머스업계의 우려가 크다. 이들 식품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스팩 등 보랭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택배 포장 규제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보랭재는 ‘빈 공간’에 해당한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제품 파손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재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택배 공간의 40%를 제품으로, 30%를 보랭재나 완충재로 채우면 위법이다. 포장 용적이나 횟수를 위반해 적발되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업계는 2년간 ‘제품 보호에 필수적인 아이스팩이나 완충재 등은 빈 공간에 포함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지만 환경부로부터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한 e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여름철엔 식품이 쉽게 상해 제품 용량 대비 보랭재를 많이 넣고 있는데 법규를 위반할 가능성이 커 딜레마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제품별 규제 세분화…준비 기간 줘야”각 제품의 크기에 맞는 택배 상자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것도 업체로선 부담이다. 특히 준비가 미비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법 시행 후 대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법을 준수하려면 현재보다 3~4배 많은 규격의 상자가 필요하다”며 “구입 비용뿐 아니라 상자 보관, 재고 관리 시스템 변경까지 감안하면 두 달 안에 준비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과대포장을 줄여야 하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제품별로 다른 세부적인 지침과 추가 유예 기간 등 준비 기간을 줘야 한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한 대형 식품사 관계자는 “외부 충격에 약한 제품은 완충재를 충분히 넣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용적률과 포장 횟수를 넘길 수 있다”며 “제품별로 용적률을 다르게 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추가 유예나 별도 계도 기간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추가 유예나 별도 계도 기간 운영 계획은 없다”며 “업계, 전문가와 논의해 빠른 시일 내 현실적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