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몰린 건설사 다 살리려해선 안돼…PF 근본 구조 바꿔야"

입력 2024-02-12 17:51
수정 2024-04-02 18:26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은 국토교통부 재직 시절 소방수 역할을 자주 맡았다. 개성공단, 보금자리지구, 혁신도시 등 태스크포스(TF)가 발족할 때마다 이 원장을 찾았다. 2008년 매매·전셋값이 동시에 폭등했을 때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이 원장이 수도권 주요 지역의 그린벨트를 풀고, 사전청약제도 등을 도입하면서 시장은 안정을 찾아갔다. 서울 강남 내곡, 경기 하남 미사 등에 일명 ‘반값 아파트’인 보금자리주택을 대량 공급한 건 지금도 성공한 주택정책으로 꼽힌다.

이 원장은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업계에 금리, 자재 가격 등 악재가 수두룩해 임계점을 지나서 폭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며 “이럴 때일수록 우왕좌왕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업은 항상 위기를 겪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통해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가 총체적 위기입니다. 특히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확산 우려가 큽니다.

“건설시장은 다른 시장과 달리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고 사업 기간이 깁니다. 타인 자본을 많이 쓰기 때문에 분양을 통해 자본을 빨리 회수해야 하죠. 시장이 좋을 때는 큰돈을 벌지만 안 좋을 때는 다 망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다 망했죠. 당시 개별 프로젝트가 모기업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게 PF 기법입니다.”

▷올해 초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다음 기업이 어디가 될지 긴장하고 있습니다.

“다음 차례가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기업은 시장 논리에 의해 당연히 도태되는 거죠. 건실한 사업장을 보유해 조금만 지원해서 살 수 있는 기업은 지원하는 것이고, 감정적으로 다 살리려고 하면 안 되죠. 한계기업을 돕는 건 PF 사태 해결책이 아닙니다. PF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야 해요. 지금은 A현장이 문제가 되면 B, C현장뿐 아니라 모기업까지 옥죄니까 문제예요.”

▷부동산 PF 사태의 대응 방향은 뭐가 있을까요.

“건설업은 사업 주체인 시행과 건설인 시공이 나뉘어 있어요. 사업 리스크 분산이죠. 시행사가 담보할 게 없다 보니 대부분 사업장이 시공사가 책임준공과 지급보증 등을 맡습니다. 결국 시공사가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입니다. 앞으로는 자본력을 갖춘 시행사가 필요합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시행사가 자기자본을 늘리도록 해야지 갑자기 기준을 높이면 주택 공급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건설사와 정부, 금융회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시기적으로 집중된 대출 만기를 분산해 단기간 부실채권이 대량 발생하는 것을 억제해야 합니다. 동시에 사업성이 없는 프로젝트를 정리해야 하죠. 이때 대주단으로 참여한 금융회사는 적절히 손실을 분담하되 정부가 일정 부분 부실채권 매입을 통해 손실을 공유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건설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정부 역할은 무엇입니까.

“경기 침체 때는 민간보다 공공이 투자해야 합니다. 그게 마중물 역할이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침체한 경기를 활성화하고 고용 유발 효과를 불러옵니다.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도 높아집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 초반대(IMF 전망치 2.3%)인데 이에 도달하기 위해선 SOC 투자가 29조~30조원 수준(올해 SOC 예산 26조4000억원)은 돼야 합니다.”

▷원활한 주택공급 방안은 무엇일까요.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통한 도심 주택 공급은 수요는 많지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빨리해도 10년씩 걸려요. 단기간 공급책은 택지지구 개발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3기 신도시만 한 입지가 없습니다. 교통망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확충 등 정부 의지도 강한 것 같아요. 신도시는 성남 판교처럼 자족 기능도 꼭 넣어야 합니다.”

▷도심에서 공사비 갈등으로 사업이 크게 지연되고 있습니다.

“조합은 조합대로, 신탁은 신탁대로, 시공사는 시공사대로 각자의 몫을 챙기려다 보니 갈등이 생깁니다. 각자 역할에 맡는 책임을 분담해 보다 지속가능한 사업 구조가 형성돼야 할 겁니다. 우리 사회 전체로 본다면 이 정도 수준의 주택을 갖기 위해선 이 정도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죠. 자기 집은 최고급으로 지으려고 하면서 분담금은 최소화하려는 건 앞뒤가 안 맞죠. 가치를 어디에다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도 같은 맥락입니다.”

▷건설경기가 안 좋을 때 ESG 경영이 제대로 작동할까요.

“일리가 있어요. ESG를 한두 기업만 하면 하는 기업만 손해죠. 하지만 다 같이 하면 파이가 커집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이윤 창출만 하면 됐어요. 그게 묵인되는 시절이었습니다. 법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이들이 이익을 얻었죠. 지금은 투자자가 재무제표만 봐서 기업을 판단할 수 없는 시대예요. 소비자는 그런 기업 제품을 소비하죠. 국내에선 ESG 하면 환경만 신경 쓰는데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건설사의 미래 대비책은 뭐가 있을까요.

“연구원에서는 스마트 건설을 중심으로 한 생산성 향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건설을 기능 쪽으로만 보면 건설정보모델링(BIM) 인공지능(AI)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디지털 전환(DX)이 핵심이에요. 내 업무를 어떻게 계량화·정량화할 것인지의 문제죠. 디지털 전환으로 업무를 투명화하고 체계화하면 인력 부족, 품질, 안전 등 건설업의 고질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듯이 디지털 전환은 건설업이 생존을 위해 꼭 받아들여야 하는 대세예요.”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확대 적용이 중소 건설사 최대 화두입니다.

“건설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계의 큰 우려입니다. 영세 사업장에서 사고가 나면 처벌뿐 아니라 사업을 아예 접게 될 겁니다. 무엇을 위한 법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2년 유예 기간을 줬는데 1년 더 달라는 요구를 왜 들어주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준비 기간을 더 달라는 건데요.”

▷정부의 ‘1·10 부동산 대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오피스텔 발코니 허용과 신축 소형주택의 취득세 감면 등을 담은 이번 대책은 시장을 잘 작동시키기 위한 정부의 조치입니다. 얼어붙은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죠. 수요 회복과 산업 활성화를 위해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면밀히 검토해 추가 조치를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규제 완화의 주안점은 어디에 둬야 합니까.

“과거에는 처벌 위주의 정책이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규제보다는 지원으로 그리고 공공은 물론 민간을 중심으로 시장을 활성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이런 기조가 지속되고 그 긍정적 영향이 전파되길 바랍니다.”

▷부동산 시장은 어떨까요. 연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호전될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은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고, 한국은행도 동결하거나 내리겠죠. 금리는 임계점을 지나 안정화 단계입니다. 금융 환경이 서민과 기업에 우호적이라는 얘기죠. PF 사태도 정상적인 기업은 돌아가게 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구조조정을 통해 건강한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해줘야 미래가 있겠죠. 시장에 맡기되 정부가 방향을 잘 정해줘야 합니다.” 이충재 건설산업硏 원장은
7급 출신으로 차관급 올라…세종청사 이전 총괄국토교통부 관료 출신으로 40년 넘게 건설·주택 분야에 종사해 온 전문가다. 1980년 건설부(현 국토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국토해양부 부동산산업과장, 공공주택건설추진단장, 국민임대주택건설기획단장 등을 지내며 개성공단·혁신도시 건설, 보금자리주택 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제8대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에 임명된 뒤 정부세종청사 이전을 총괄했다. 2022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심은지/한명현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