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뛰지 마" 달라진 日…'무료 배송' 표시도 없앤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4-02-10 11:01
수정 2024-02-10 11:02


인구감소의 역습…'물류 2024년 문제'⑬에서 계속 일본은 세계적인 물류 선진국이다. 일본 최대 택배회사인 야마토운수가 개인의 화물을 집으로 배달하는 '택배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건 50여년 전인 1976년이다. 1998년에는 원하는 시간대에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시간 지정 서비스도 시작했다.



지금까지 일본의 물류 서비스는 '더 빨리, 더 싸게' 외길을 달려왔다. 하지만 '물류 2024년 문제'를 맞아 '더 빨리, 더 싸게'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문제'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트럭 운전기사에게도 워라벨(일과 생활의 밸런스)을 보장함으로써 물류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이다. 더 늦추거나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뜻이다.

야마토운수도 직원들의 부담이 한계에 다다른 2017년부터 서비스를 바꾸고 있다. 종업원의 휴식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이나 심야 시간대의 지정배송을 폐지하고 지정 시간대의 범위 역시 확대하는 추세다.



온라인 쇼핑몰도 변하고 있다.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재팬이 운영하는 온라인쇼핑몰 '야후!쇼핑'은 2022년 8월 늦은 배송을 선택하면 포인트 같은 특전을 주는 서비스를 시범운영했다. 그 결과 전체 주문자의 51%가 늦은 배송을 선택했다. 가격이 더 저렴하면 배송이 늦어지는 걸 감수할 소비자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결과를 토대로 야후!쇼핑은 지난해 4월부터 소비자가 배달 희망일을 늦추면 페이페이 포인트를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페이페이는 일본 최대 캐시리스 결제 서비스다. 포인트 지급은 가격을 깎아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 최대 온라인 벼룩시장인 메르카리도 '느린 배송'을 선택하는 이용자에게 가격을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온라인 쇼핑몰의 '무료 배송' 표시도 개선하기로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배송에 돈이 안 들어갈 리가 없다. '무료 배송' 상품도 실은 배송에 들어가는 비용을 제품 가격에 포함시키거나 택배회사의 단가를 후려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무료 배송'이라는 표시를 줄임으로써 소비자들에게도 '물류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는다는게 일본 정부의 계획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일본 기업에 있어 물류는 단순한 비용이었고 삭감의 대상이었다. 1990년 물류사업의 규제를 대폭 완화한 '물류이법物流二法'의 시행으로 운송업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물류 비용은 깎아야 하는 것'이라는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공급이 크게 늘면서 수요자인 제조업체(화주)들의 힘이 강해진 결과다.

일본로지스틱스시스템협회에 다르면 2019년 일본 기업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물류비 비율은 4.9%였다. 1995년에 비해 1%포인트 가량 낮아졌다.



하지만 물류비를 어떻게든 줄여서 이익을 내는 '비용 절감 경영'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물류 서비스는 더 이상 개별 국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운전기사 부족은 주요 경제대국의 공통적인 과제다. 국제도로수송연맹(IRU)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260만명 이상의 트럭 운전기사가 부족하다.

월마트 입사 1년차 운전기사의 연간 급여는 최대 11만달러(약 1억4618만원)다. 엔화로는 약 1600만엔이다. 반면 같은 조건의 일본 운전기사 연간 급여는 400만~500만엔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 기업이 물류는 줄여야 할 비용이라는 자세를 고수했다가는 가뜩이나 부족한 운전기사가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더 빨리, 더 싸게'였던 시스템을 바꿔 물류 2024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비자로서는 전방위적인 가격 인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주요 물류회사들이 가격인상에 나서면서 앞으로 운송 비용은 10~20%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 가격도 따라 오를 수 밖에 없다. 식품 도매 대기업 미쓰비시식품의 교야 유타카 사장도 "(물류 비용 상승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구감소의 역습…'물류 2024년 문제'⑮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