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트라는 목표달성 기법이 있다. 일본 디자이너가 1987년 만든 일종의 표다.
본질을 뜻하는 '만달(Mandal)'에 소유를 뜻하는 '라(Ra)', 기술을 의미하는 '아트(Art)'가 결합해 만다라트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결국 만다라트는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틀'이라는 뜻이다.
만다라트를 작성하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정중앙에 달성해야할 궁극의 목표를 적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8개의 중(中)목표를 쓴다.
이후 각각의 중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8개의 소(小)목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만다라트를 모두 구성하면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뤄야할 64개의 세부 과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만다라트로 자신을 갈고 닦은 오타니
한국에서 만다라트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역시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를 통해서일 것이다. 2020년을 전후해 오타니의 이름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지면서 그의 만다라트 역시 인터넷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오타니는 고등학교 1학년때 이같은 만다라트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를 단련했다
'8개 일본 프로구단에서 드래프트 1순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이를 위한 몸 만들기, 제구, 구위, 멘탈, 구속 160㎞/h, 인간성, 운, 변화구 등의 중목표를 적었다. 그리고 하나 하나의 중목표를 이루기 위한 소목표들을 제시했다.
특히 야구선수로서 자신의 기량을 높이기 위한 신체 단련 이외에 인간성을 단련하기 위한 여러 가지 목표가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멘탈'이라는 중목표를 위해서는 '머리는 차갑게, 심장은 뜨겁게' '마음의 파도를 안 만들기' 등의 소목표를 세웠다. '운'을 위해 '쓰레기 줍기' '부실 청소' '물건을 소중히 쓰자' 등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만다라트를 보고 있으면 자신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하던 청소년기 오타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희망과 꿈, 진취적인 기상이 그대로 묻어나고 목표 달성을 위해 흘렸을 땀이 선연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투타 양면의 성공적인 커리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모두가 오타니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과 노력을 해야하는지 한 눈에 보여준다. 만다라트로 '모심'을 받았던 안희정
하지만 기자는 오타니가 아닌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통해 만다라트를 처음 접했다.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2020년 3월 출간한 <김지은입니다>에는 안 전 지사의 만다라트가 소개돼 있다.
만다라트의 주인공은 안희정이지만, 이 만다라트를 통해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은 안희정이 아니다. 안 전 지사의 측근들이 어떻게 하면 안희정을 더 잘 모실까가 만다라트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안희정 만다라트'의 가장 큰 목표는 '민주주의 지도자 보필'로 제시된다. 여기서 민주주의 지도자란 당연히 안 전 지사다.
이를 위한 중목표로 '선택의 최소화' '팩트' '보호' '안테나' '외장하드' '로열티' '악역' '개인관리' 등이 제시된다. 하나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세부 과제에서 이 만다라트의 성격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로열티'의 세부과제는 '영광은 리더, 칭찬은 동료, 책임은 내가', '시키기 쉬운 부하 되기' 등이다. '악역'이란 중목표를 위해선 '철저히 리더만을 위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보호' 중목표에는 '내 몸의 방패화'가 제시된다. '개인관리'를 위해서 '개인 약속 지양', '아프지 않기', '겸손, 인내, 희생'등의 실천과제를 요구한다.
오타니의 그것과 똑같은 형식이지만 안희정의 만다라트를 보고 있으면 참담함, 개인의 수단화 등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한 사람을 높이고,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어디까지 희생해야하는지 보여준다.
안희정의 만다라트로 '모심'을 받는 사람은 분명히 여러모로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편함 속에서 자신에 대한 단련과 주위에 대한 배려를 잊어갈 수 밖에 없다.
안 전 지사의 수행팀장 등을 맡으며 '안희정 만다라트'를 실제로 만들었던 문상철씨가 지난해 출간한 <몰락의 시간>에는 권력에 물들어간 안 전 지사의 내면이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생생히 기록돼 있다. 오타니와 안희정의 차이안 전 지사와 오타니는 한국인과 일본인, 정치인과 운동선수라는 차이가 있다. 둘의 만다라트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일본 운동선수와 측근들에 보다 훌륭한 보좌를 요구하는 한국 정치인의 차이로 더욱 극명해진다.
안 전 지사가 만다라트로 측근들에 모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단련했다면 어땠을까. 주위 사람들과 지지자를 실망시킨 불미스러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꼭 두달 뒤면 총선이 치뤄진다. 총선을 통해 선출되는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모두 저마다의 권력을 갖고, 이런 저런 보좌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들은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기 위해 오타니의 만다라트에서 영감을 얻고, 안희정의 만다라트는 거울삼기 바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