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모롤'(산리오 캐릭터 중 하나)을 좋아하는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데, 아이가 굿즈를 사달라고 할 때마다 손이 벌벌 떨려요."
"산리오가 엄마들 등골 빼네요. 신제품이 계속 나오는데 어쩌죠."
최근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일명 '맘카페'에서 학부모들이 "등골이 휜다"며 털어놓은 말이다. 일본의 캐릭터 기업인 '산리오'의 캐릭터 상품은 최근 초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서 '필수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에는 '산리오 캐릭터 열쇠고리에 100만원 쓴 영상' 등 초등학생들의 산리오 '언박싱'(구매 후기) 영상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산리오는 1974년 선보인 '헬로키티' 캐릭터로 국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졌다. 과거엔 헬로키티와 마이리틀스타, 케로케로케로피 등이 인기였다면, 최근엔 시나모롤, 쿠로미, 마이멜로디, 폼폼푸린 등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3 캐릭터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리오 캐릭터는 어린이부터 10대, 20대는 물론 중장년층까지 전 연령대에서 인기 캐릭터 순위 '톱(Top) 5'에 이름을 올렸다.
키워드 분석 사이트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달 7일부터 지난 6일까지 온라인상에서 '산리오' 관련 긍정 키워드 비율은 88%를 차지했다. 다수 언급된 긍정 키워드로는 '핫하다', '인기 많다', '사고 싶다', '최애'(가장 사랑함), '유행한다' 등이 있었다.
반면 부정 키워드로는 '비싸다'가 눈에 띄었다. 산리오 캐릭터 책가방은 온라인에서도 20만원 안팎으로 판매되고 있고, 한정판으로 나온 산리오 장난감은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고가의 제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리오에 빠진 아이를 둔 부모들 사이 산리오 제품이 '신종 등골브레이커'로 불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 학부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산리오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딸아이가 산리오 캐릭터에 꽂혀서 핀을 여러 개 사고 있어 걱정"이라며 "산리오 캐릭터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를 본 학부모들은 "우리 집도 초등생 딸이 맨날 휴대폰 보면서 산리오 제품을 사달라고 난리다", "어제 백화점 갔는데 딸이 귀신같이 산리오 캐릭터만 찾아내는데 말리느라 애먹었다" 등 공감을 쏟아냈다.
이런 모습은 설 연휴 전날인 8일,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 내 토이저러스 매장의 산리오 전용숍에서도 포착됐다. '산리오 제품 몇 개를 사느냐'를 두고 부모와 아이 간 실랑이가 오가는 모습도 보였다. 롯데마트 직원은 "요즘 장난감 판매대에서 제일 잘 나가는 제품이 산리오에서 나온 문구나 인형들"이라고 말했다.
8세 조카를 위해 설 선물을 사러 왔다는 40대 김모 씨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보통 사주는 편인데, 한번 나가서 산리오 제품을 사면 10만~15만원을 쓰고 있다"며 "제한 없이 사주면 100만원도 넘게 쓴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10세 여아를 키우는 30대 강모 씨도 "산리오 문구를 사겠다고 아이를 데리고 일본에 다녀온 적도 있다"며 "국내에서도 산리오 제품을 파는 곳도 많아졌는데, 2~3만원어치 사주는 건 이제 너무 당연해졌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초등생들 사이 '산리오 광풍' 현상이 이는 것을 두고, '디토(ditto)소비'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디토소비는 특정 콘텐츠 또는 인물 등을 추종해 구매 결정을 하는 소비 트렌드를 뜻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등이 집필한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디토소비를 두고 "단순히 누군가를 쫓으며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에 적합한 대상을 찾고, 이를 추종해 소비하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본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기존의 구매와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을 단순화 또는 생략하며 소비하는 양상이 짙어졌다는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어린 학생들 사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거리낌 없이 소비하고, 자유롭게 좋아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며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감정과 인식을 우선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그와 관련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