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까지 삼성전자에 대적할 반도체 회사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2011년 인텔을 제치고 글로벌 시가총액 1위 반도체 회사에 등극했고 2012년에는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 시총 5위에 오르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세계적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엔비디아, TSMC 같은 반도체 기업은 ‘라이벌’ 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했다.
2017년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모든 게 변했다. 2019년 TSMC, 2020년 엔비디아에 차례대로 추월당했다. 글로벌 시총 순위는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종가 기준 삼성전자 시총은 498조6704억원(우선주 포함)이다. 전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822조원을 기록한 TSMC의 절반 수준이다. 엔비디아(2238조원)와 비교하면 5분의 1에 불과하다. 글로벌 시총 순위는 22위로 각각 6, 10위에 오른 엔비디아와 TSMC에 크게 뒤처졌다. IT 기업 시총 순위도 10위로 밀려났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부진과 인공지능(AI) 관련주의 약진 등 산업적인 변화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원인으로 단단했던 삼성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을 꼽았다. 총수가 사법 리스크에 노출되면서 격변기에 중요한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한 탓이다. 애플, 구글, 엔비디아 등 라이벌 회사들이 공격적 투자와 인수합병(M&A)으로 치고 나가는 사이 삼성전자 M&A팀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경제계 관계자는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총수가 유일한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재로 삼성이 미래 사업을 발굴하는 데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주요 글로벌 기업의 시총이 몇 배씩 불어나는 동안 삼성전자의 시총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지난 5년간 엔비디아와 TSMC의 시총이 각각 18배, 3배 늘어나는 동안 삼성전자는 67% 증가하는 데 그쳤다. AI, 자율주행 등 신기술이 기존 산업을 대체해 나가는 격변기에는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 대형 M&A에 등에 나서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만큼 그동안 ‘검토’ 리스트에만 올렸던 대형 사업들을 하나씩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며 “주주환원 방침과 대형 M&A가 진행되면 지지부진했던 주가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