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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배송 규제 등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대면 진료 기업들이 해외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진료 플랫폼 자체를 외국으로 옮기거나 해외에서 재외국민 서비스를 시도하는 식이다. 한국 의료산업이 규제에 발목 잡힌 사이 기술력을 갖춘 한국 스타트업들이 해외 시장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닥터나우, 규제 없는 日 진출비대면 진료 1위 플랫폼 닥터나우는 일본에 법인을 설립하고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6일 발표했다. 일본 법인은 닥터나우의 100% 자회사로, 창업자인 장지호 대표가 일본에 체류하며 법인장을 맡는다. 국내 사업은 지난해 11월 전략이사로 영입된 정진웅 사장이 총괄한다.
일본은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 등 원격의료 시스템이 법제화돼 초진부터 제한 없이 허용된다. 장 대표는 “일본은 다양한 의료기관과 약국 체인 등 원격의료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말했다. 이미 라인헬스케어, 아마존헬스케어 등 빅테크들이 일본에서 비대면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 다른 비대면 의료 플랫폼 운영사 메디히어는 아예 미국으로 본사 이전을 추진 중이다. 메디히어는 한국과 미국에서 투트랙으로 사업을 하다가 한국 사업이 규제로 주춤하자 성과가 나고 있는 미국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로 했다. 미국에 대면 진료와 비대면 진료를 섞어 제공하는 ‘닥터히어 병원’을 개원했다. 월 119달러의 무제한 구독 서비스가 진료비 수준이 높은 미국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헬스케어 기업 라이프시맨틱스는 태국을 겨냥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콜 타이’의 현지 기술 실증을 최근 마무리했다. 다음달 태국 방콕의 상급종합병원인 라마9병원과 닥터콜 타이 사용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태국은 정부 주도로 비대면 진료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국가다. 안시훈 라이프시맨틱스 SX부문장은 “태국 비대면 진료 시장은 1200억원 규모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룰루메딕은 2022년 베트남에서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선보인 뒤 여행자보험, 긴급 이송 등을 제공하는 어시스트카드코리아를 인수하며 해외 의료 지원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베트남은 비대면 진료와 약 처방, 배송 등 관련 규제가 거의 없다. “약 배송 풀려야 생존길 열릴 것”코로나19 시기 한시적으로 허용돼 크게 성장한 비대면 진료 업계는 지난해 6월 초진 제한 등 규제가 생기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한시적 허용 시기 월평균 22만2404건이던 비대면 진료 건수는 허용 범위가 크게 축소된 지난해 6~7월엔 15만3339건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12월 국내 규제가 일부 완화되면서 숨통이 트였지만 약 배송 등 핵심 서비스는 여전히 막혀 있는 상황이다. 선재원 메라키플레이스 대표(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는 “진료를 비대면으로 받더라도 약은 대면으로 수령해야 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29개 중 절반은 지난해 규제 강화 후 넉 달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닥터나우는 인력의 50%를 감축하는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의료계의 반발로 의료법 개정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이 규제로 끙끙대고 있는 사이 기술력만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