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이재용, 뉴삼성 실행 탄력…"재판부 현명한 판단 감사" [종합]

입력 2024-02-05 16:55
수정 2024-02-05 16:56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이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2020년 검찰 기소후 약 3년5개월 만의 결론이다. 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당장 1심 무죄로 사법리스크가 부분 해소됐다.

이 회장 측은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인정됐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감사하다"는 입장을 내놨다.법원 "합병 결정 '경영권 승계' 유일 목적으로 보기 어려워"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는 5일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선고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삼성 전·현직 임직원 13명도 전부 무죄를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회장이 2015년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 목적으로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춰 제일모직에 합병되도록 관여했다고 봤다. 지난해 11월 결심공판에서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당시 이 회장은 "개인의 이익을 염두해 둔적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날 재판부는 합병 필요성에 대해 양사 이사회의 검토가 이뤄졌고, 사업적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경영권 승계'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이사회(삼성물산 합병TF경영진이사회)는 악화된 경영상황을 검토하고 (제일모직과) 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법원은 "2015년 3월과 5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양사의 합병 필요성과 장애사유 등 검토를 거친 점이 인정된다"며 "양사 이사회의 실질적 검토에 따라 진행됐으며, 경영권 강화·승계만이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합병을 통한 그룹 지배력 강화는 삼성물산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다"며 합병의 주 목적이 피고인(이재용)의 경영권 강화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검찰이 공소장에서 언급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 G'에 대해선 "기업집단 차원에서 계열사 지배력 강화를 위해 효율적으로 합리적 사업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부분"이라며 "검찰의 주장처럼 대주주 이익을 위한 '약탈적 승계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조건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판단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공시·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도 의도가 있었다고 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비상경영' 최악 상황 면했다…뉴삼성 전략 향방 관심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를 압박했던 사법 리스크가 부분 해소되면서 이 회장의 '뉴삼성' 전략 실행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이 회장은 '무보수'와 '미등기' 상태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한 미등기 임원인 이 회장의 복귀에 관심이 쏠린다.

가장 먼저 대규모 투자와 신사업 발굴 움직임에 시선이 쏠린다. 이 회장은 이번 부당 합병·회계 부정 건으로 2021년 4월부터 작년 11월 결심 공판까지 총 106번 열린 재판에 해외 출장 등으로 불출석한 11번을 제외하고 총 95번 출석했다. 계속된 사법리스크에 이 회장의 '뉴삼성' 전략 실행에도 발목이 잡혔었다. 벤처 투자와 중소 인수·합병(M&A) 등은 이어졌지만, 대형 M&A는 2017년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것이 마지막이다.

이 회장 등 삼성 수뇌부가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리면서 수감과 재수감을 반복하는 사이 2015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파운드리 시장 대응이 늦어졌다. 이 기간 TSMC는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삼성은 지난해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악화하며 한 해 반도체 부문에서 1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은 전년 대비 37.5% 줄며 인텔(487억달러)에 역전당했다.

업계는 최근 급부상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선점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린 것도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반도체와 양대 축인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지난해 애플에 글로벌 1위 왕좌를 내줬다.

삼성은 새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미래사업기획단을 만든 데 이어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신사업 발굴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신설했다. 사법리스크가 부분 해소되면서 사업 확장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사법리스크는 일정 부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측이 항소해 재판이 2심과 대법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 측은 이에 대해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고만 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