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에도 갑(甲)과 을(乙)의 관계가 존재할까. 갑과 을을 정하는 기준은 뭘까.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는 연애를 하고 있다는 토로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직장인 A씨가 "'나니까 널 만나주는 거야', '널 위해서 하는 소리야' 같은 말을 상대방에게 자주 듣다 보니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호소하자 대부분은 '연인 간 가스라이팅이 아니냐'고 우려했다.
A씨는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점이 있어서 이를 얘기하면 남자친구가 도리어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내 기분이 더러워졌잖아. 대체 왜 그래?"라고 화를 낸다고 전했다. 이어 "남자친구가 약속 시간에 30분 늦어놓고는 '나는 시간에 강박적으로 맞추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왜 그런 걸 이해하려 하지 않냐'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대표이사 박수경)가 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미혼남녀 2명 중 1명은 "연애할 때 갑을관계가 있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과반(60.3%)은 연인 사이에 갑과 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연인 사이에 갑을관계가 생기는 이유로는 ‘애정도 차이’(49%) 를 꼽았다. 이어 ‘자존감 문제’(24%), ‘성격 차이’(17%), ‘경제력 차이’(7.3%) 등의 이유로 갑과 을이 정해진다고 답했다.
미혼남녀가 정의한 을의 연애는 ‘존중받지 못하는 연애’(28%) 였다. ‘항상 맞춰 주는 연애’(25.7%), ‘언제든지 나만 놓으면 끝날 연애’(23%), ‘혼자만 노력하는 연애’(13%) 라고도 정의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의 경우 ‘항상 맞춰 주는 연애’(31.3%), 여성의 경우 ‘언제든지 나만 놓으면 끝날 연애’(29.3%)가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박사는 지난 2021년 tvN '알쓸범잡'에 출연해 배우 서예지, 김정현의 문자 내용을 예시로 '가스라이팅'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오 박사는 "'가스라이팅'이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난다"며 "어떤 사람의 심리상태에 조작을 가해 자신을 불신하고 가해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하는 심리적 학대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까운 사이에서 애착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정서적인 학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며 "상대가 실수하면 '넌 어떻게 맨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니?'라며 상대를 깎아내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 상대는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이 생기고 '내가 잘하고 있나?'하며 상대의 판단을 기다리게 된다"라며 "(서예지 김정현 문자에도) 끊임없이 상대에게 보고하고 명령과 지시를 하는 내용이 있다"고 소개했다.
김정현이 지난 2018년 MBC '시간'에 출연했을 당시 연인이었던 서예지는 김정현을 '조종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상대 배우인 서현과 애정 신을 모두 거부하는 등 대본 수정을 요구하도록 조종했다는 것.
당시 문자에는 "오늘은 어떻게 했는지 말 안 해?", "행동 잘하고 있어?", "지금 기분 나쁘거든. 사진 찍어 보내봐", "스킨십 다 빼시고요", "행동 딱딱하게 잘하고", "스킨십 노노"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김정현은 "여자들이랑 눈도 안 마주쳤고요", "딴짓 안 하고요"라고 답했다. 이에 오 박사는 "피해자가 '사람들이 네가 나한테 너무 심하게 대한다고 하던데'라고 말하면 '그들이 뭘 알아. 내가 널 더 잘 알지'라고 하면서 고립시킨다. 이런 걸로 사람은 피폐해져 가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