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급속도로 팽창하는 비급여 진료 시장 통제에 나선다. 사실상 방치 상태에 놓인채 만연했던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 비급여 과잉 지출 항목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반 진료를 끼워파는 ‘혼합진료’가 금지된다. 의대를 졸업해 의사 면허만 받으면 개원이 가능했던 제도도 뜯어고친다. 의사만 가능했던 보톡스, 필러, 피부 레이저 등 미용 시술 자격을 확대해 이른바 ‘미용 의사’의 기득권도 없앤다.
▶본지 1월 30일자 A3면 참조 ○혼합진료 단계적 금지 추진 보건복지부는 1일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비급여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그간 필수의료 붕괴의 핵심 원인으로 지적돼온 비급여 진료의 인센티브를 대폭 줄여 소위 피안성정(피부과·안과·성형·정형외과)로의 인재 ‘쏠림 현상’을 막고, 과잉, 진료로 인한 건보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이번 방안에서 처음으로 혼합진료 금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혼합진료는 급여 진료와 비급여를 함께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비급여 진료 항목인 도수치료를 받으면서 건보가 적용되는 열·전기치료 등 기본 물리치료를 함께 받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우선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백내장 수술 다초점렌즈 등 실손보험 지출 상위 비급여 항목에 대한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금지라 해서 지금처럼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함께 제공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경우 기존엔 건강보험이 적용되던 기본 물리치료에 대한 급여 지급 없이 본인이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통상 회당 10만~20만원인 도수치료를 받을 때마다 진찰료를 포함해 만원 안팎의 건보 급여 지급이 이뤄졌던 것이 사라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혼합진료가 과잉 진료를 부추기고 건보 재정 누수로 이어진다며 오래 전부터 금지 수준의 통제에 나설 것을 주문해왔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있다. 독일에선 비급여 진료가 필요할 경우 환자가 의사의 증빙 서류를 첨부해 공공보험에 사전 승인 신청을 해야 한다.
그간 정부가 수차례 필수의료 대책을 내놨지만 의료계 반발에 혼합진료 금지는 번번이 대책에서 빠졌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혼합진료 관행을 이대로 두면 비급여 팽창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라며 “치료 효과성이 없는 비급여 진료는 아예 불가능하도록 목록에서 제외하는 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급여 팽창의 핵심 원인인 실손보험 혜택도 축소한다. 복지부는 급여 항목에 대해 건보를 적용 받고 난 뒤 내는 본인부담금에 대해선 실손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70~80% 수준인 보장 수준도 낮춰 본인부담률도 높일 계획이다. 박 차관은 “실손보험이 비급여에 대한 과잉진료를 낳고 있다”며 “실손보험과 결합한 비급여의 팽창이 병원 필수인력이 미용·성형시장으로 빠져나가는 장치로 역할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개원·미용의료 메리트 낮춰 인재 유출 억제의원 개원의 문턱도 높인다. 복지부는 일정 기간, 수준의 임상 수련을 이수해야 독자적인 진료가 가능해지도록 ‘개원 면허’를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에선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 면허만 받으면 개원이 가능하다. 졸업 후에도 2년 간의 교육을 거쳐야 개원이 가능한 캐나다나 의사 면허와 별도로 진료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 영국처럼 개원 문턱을 높여 젊은 의사들을 필수의료 분야로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의사만이 할 수 있었던 보톡스 등 미용의료시술에 대한 진입 규제도 푼다. 미용 의료 시술과 관련한 별도 자격제도를 도입해 시술 자격을 확대하는 안이 유력하다. 영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의료적 필요성 낮고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일부 미용의료시술에 대해 별도의 자격제도가 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실현될 경우 미용 시술이 핵심 수입원인 피부, 성형외과 업계의 경쟁은 치열해질 수 있다. 개원과 미용 의료가 가진 그간의 ‘메리트(merit·장점)’을 줄여 필수의료 인재들의 과도한 유출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은 과거 정부가 내놨던 ‘모니터링 강화’ 수준의 비급여 대책에 비해선 한 단계 진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들 과제 모두 곧바로 시행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는 중장기 과제로 미뤄뒀다. 이들 모두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과제인만큼 연내 설립할 대통령 직속 전문가 자문기구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의 논의를 거친 뒤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내에선 결국 의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상당수는 ‘공수표’로 끝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한 문제고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슈인만큼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