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가 지난해 증시를 이끌었던 2차전지주에 대해 어두운 실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기차 업황 둔화와 원재료 가격 하락, '트럼프 리스크' 등이 주요 원인이다. 관련주들은 주식시장에서도 힘을 못 쓰고 있다.
1일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에코프로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789억원으로 전년 대비 21.9%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에코프로비엠도 전년 대비 22.0% 줄어든 2966억원으로 전망됐다.
먼저 실적을 발표한 2차전지 기업들의 성적표는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앞서 삼성SDI는 지난해 매출 22조7083억원, 영업이익 1조6334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2.8% 증가한 사상 최대 실적이었으나 영업이익은 9.7%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만 놓고 보면 아쉬움이 더욱 짙어진다. 삼성SDI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311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5% 줄었다. 시장 전망치를 20% 이상 밑도는 '어닝쇼크'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주춤했다. 지난해 4분기 매출 8조14억원, 영업이익 3382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시장 기대치(약 6000억원)를 크게 밑돈 실적이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42.5% 증가했으나, 전분기보다는 53.7%나 감소했다.
이는 2차전지의 전방산업인 전기차 수요가 눈에 띄게 둔화한 영향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재고가 계속 쌓이자 제너럴모터스(GM)는 미시간주 공장의 전기 픽업트럭 생산을 1년 연기했다. 2022년부터 올 3분기까지 해당 차량을 40만대 생산하겠다는 목표도 폐기했다.
포드 역시 전기 픽업트럭 모델인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줄일 계획이다. 테슬라는 지난해 4분기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생산 비용 절감 방안으로 기존 배터리 공급 업체와 가격 관련 재협상 가능성을 밝혔다.
더 심각한 건 수익성이다. 그간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광물 가격의 내림세가 수익성 하락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전날 탄산리튬 가격은 1kg당 86.50위안(약 1만6010원)으로 전년 평균 대비 63.38% 떨어졌다.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은 '판가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비싼 가격으로 매입한 원재료로 만든 제품이라도 이후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면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한다. 광물 가격을 비싸게 사서 싼값에 양극재를 파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메탈 가격 상승 효과로 주요 2차전지 소재 업체들의 실적이 크게 좋았었지만 이젠 정반대 상황"이라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광물 가격 하락이 재고 평가손익 등 실적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올 11월 재선될 수 있다는 점도 2차전지 업계에선 리스크로 꼽힌다. 그는 재집권 시 이른바 '바이드노믹스'의 핵심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보조금(세제 혜택)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은 IRA에 맞춰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해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IRA 폐지를 현실화할 경우 이들의 사업 계획은 당장 큰 차질을 빚는다. 장 연구원은 "IRA가 중국 등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국내 2차전지 업체에 더 유리하다는 분석이 있었지만 이제 그 가능성이 희석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가는 끝을 모르고 내려가고 있다. 지난해 7월 장중 153만원대까지 올랐던 에코프로는 이날 50만원 수준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올 들어서도 20%가량 떨어졌다. 지난 25일엔 종가 기준 50만원선이 깨지기도 했다. 에코프로비엠도 지난해 7월 58만원에 달하던 주가 수준이 반년 만에 21만원대까지 내려왔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도 올 들어서만 각각 약 12%와 19% 밀렸다. 지난해 에코프로와 함께 급등했던 포스코퓨처엠은 27%가량 떨어졌다. 정용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상반기까지는 2차전지 업체의 실적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반기부터는 주요 제조사들의 신차 출시가 이어지고 전기차 가격이 낮아지면서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