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싱가포르

입력 2024-01-29 17:50
수정 2024-01-30 00:13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끝자락에 걸친 작은 도시 국가다. 영국,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쳐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했다. 그때만 해도 ‘곧 없어질 나라’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서울 크기 정도의 국토 면적에 당시 인구는 530만 명에 불과하고 변변한 산업 기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가 지금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부자 나라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만4500달러로 세계 5위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국가경쟁력은 세계 4위다.

싱가포르의 성공은 생존을 위한 끝없는 혁신과 노력의 산물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요충지란 지리적 이점을 살려 물류 허브 전략을 펴고, 카지노를 허용해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산업을 키우고,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외국 기업을 유치한 게 그런 사례다.

통치 체제가 ‘독재적’이란 점은 싱가포르 비판 때 나오는 단골 메뉴다. 싱가포르는 초대 리콴유 총리와 후계자인 고촉통 총리를 거쳐 지금은 리콴유의 아들 리셴룽 총리가 20년째 집권 중이다. 21세기에도 태형(곤장)이 버젓이 있는 나라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중 하나다. 영어가 공용어고 가정부나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쉬운 데다 싱가포르국립대(NUS) 등 세계 수준의 대학을 보유해 전 세계 최고급 인재가 몰린다. 세금 부담도 낮다. 상속세, 증여세, 양도소득세가 없고 법인세 최고세율은 17%(한국은 24%), 소득세 최고세율은 22%(한국은 45%)에 불과하다. 한국의 기업가, 자산가들이 낮은 세 부담과 편리한 거주 여건 때문에 싱가포르로 달려간 지 꽤 오래됐다고 한다. 하지만 절세를 위해 무턱대고 이주했다가는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조언이다. 싱가포르의 자금세탁 방지법은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세금 회피 목적의 자금 유입을 막지는 않지만 자금 이동을 철저히 추적해 불법이 드러나는 순간 계좌를 동결하고 국고로 환수하기도 한다. 금융 신뢰가 높다는 것은 금융 부패 청정국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