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연맹 해체하라"…노조 지방본부 줄줄이 들고 일어난 이유

입력 2024-01-31 18:28
수정 2024-01-31 18:39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우정노동조합을 이끄는 이동호 위원장이 새로 조직한 중단 노조인 '우정연맹'을 두고 우정노조 내부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우정노조 지방본부들이 연이어 성명을 내고 연맹 해체와 이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조합원이 2만7000명에 달하는 거대 노조인 우정노조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며 이 위원장 거취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 노조 지방본부 일제히 "연맹 해체하라"
31일 노동계에 따르면 우정노조 지방본부는 지난 24일부터 이어 성명서를 내고 우정연맹을 규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 위원장이 출범시킨 우정연맹은 우정노조와 한국우편사업진흥원 노조, 우체국물류지원단 노조 등 우정 분야 군소노조를 묶은 일종의 중간 단체다. 연맹 조합원 수는 우정노조가 2만7000명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 노조는 모두 합쳐 2200명가량이다. 이 위원장이 초대 우정연맹 위원장에 올랐다.

우정노조 강원지방본부는 성명에서 "조합원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우정연맹 설립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연맹 출범의 불합리함이 알려지면서 노조와 조합원의 명예가 심각히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다음날 경북본부도 성명을 내고 "우정노조를 사조직화하는 영구집권의 우정연맹을 당장 해체하라"며 "연맹이 상급 단체인 한국노총을 배제하고 대정부 활동이나 교섭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지방본부들은 우정연맹 설립 시 조합원에 대한 '설명과 동의' 절차가 부족하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9개 지방본부 중 전북본부를 제외한 8개 본부가 공개적으로 우정연맹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고, 대부분의 성명에서 '연맹해체'가 언급된 이유다.

우정노조 지방본부들은 기존의 단일 노조가 연맹 형태로 변경된 것을 두고도 강하게 반발한다. 한국노총과는 별도의 상급 단체가 만들어져 '옥상옥' 구조가 됐고, 추가 인력 투입과 조합비 등의 이중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경북본부는 성명에서 "우정노조 전체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전임자는 20~21명에 불과하다"며 "이들을 연맹 인원으로 채용하면 조합 본부는 식물노조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 지적했다.

노조 지방본부들은 연맹 자체의 설립이 이 위원장의 ‘영구집권’ 때문으로 의심하고 있다. 1965년생인 이 위원장은 만 60세인 우체국의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오는 3월 우정노조 위원장 선거에 나설 수 없게 되자, 나이·연임 제한 등의 규약이 없는 형태로 우정연맹을 조직해 위원장을 맡았다는 의혹이다. 연맹 규약에 수석 부위원장과 사무처장 등 핵심 인사도 위원장의 추천을 받아 출마할 수 있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충청본부는 관계자는 "앞으로 퇴직할 민간인이 어떻게 우정사업본부와 교섭권을 가진 우정노조 위원장보다 더 강력한 교섭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정노조 선거 코앞... 한국노총 '지켜보겠다'
기업별노조와 산별노조의 중간 형태인 연맹이 교섭권 등을 가지려면 산하 노조의 위임이 필수적이다. 우정연맹이 출범부터 리더십 논란에 빠지면서 향후 큰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연맹은 일단 우정노조 위원장 선거 결과를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위원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작년 대의원대회에서 8개 지방위원장 동의를 얻어 정상적으로 연맹 설립이 추진됐다"며 "출범시킨 당사자가 존폐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선거에서 당선될 새 우정노조 위원장이 연맹 탈퇴 여부를 결정하면 따르겠다는 뜻도 나타냈다.

아직 우정노조의 법적 상급 단체인 한국노총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방침이다. 우정연맹이 별도로 한국노총에 가입하지 않아 개입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우정노조 자체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규약상 (노총이) 회원조합(우정노조)에게 조처를 요구할 권한은 없다"고 설명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