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파트 경매 물건이 크게 늘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지속으로 거래가 얼어붙으며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한 집주인이 경매로 몰리고 있어서다. 물건은 쏟아지지만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70~8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반기에 교통과 학군이 좋은 지역 아파트가 대거 경매로 나올 수 있다”며 “현금을 확보하고 꼼꼼히 따져 입지를 분석하면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아파트 경매 건수↑28일 경·공매 정보 전문 업체 경매락(옛 리더스옥션)과 법원경매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경매가 진행된 서울 아파트는 2459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1040건)의 2.5배 수준이다. 2016년(2632건)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지역별로는 작년 초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불거진 강서구에서 아파트 경매 222건이 진행돼 서울 25개 구 중 가장 많았다. 노원(168건) 강남(165건) 서초(132건) 등에서도 경매가 다수 진행됐다.
수도권 아파트도 대거 경매로 나왔다. 지난해 서울·인천·경기에서 진행된 아파트 경매는 3351건으로, 2022년(1600건)의 두 배를 웃돈다.
올해도 아파트 경매 건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경매락이 지난 24일 기준으로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경매는 208건, 수도권은 719건에 달한다. 아직 1월 경매가 모두 집계되지 않았음에도 지난해 1월 서울(146건)과 수도권(513건)을 웃도는 수치다.
경매 물량이 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낙찰가는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2013년(78.6%) 이후 가장 낮은 81.3%를 기록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수요자가 경매로 낙찰하더라도 대출을 많이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1년 107.8%에 달했던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2022년 91.1%로 내려앉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81.3%까지 떨어졌다. 올 들어선 80%대 중반에 머무르고 있다. 꼼꼼한 권리분석 필수전문가들은 현금 등 유동성을 확보한 실수요자라면 경매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래미안월곡아파트’ 전용면적 84㎡(감정가 10억400만원)는 두 번의 유찰 끝에 8억원대에 매각됐다. 이 아파트는 3차 매각일에 최저 입찰가 6억6560만원(감정가의 66.3%)에서 경매를 시작해 감정가의 80.6%인 8억898만원에 최종 낙찰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같은 면적은 지난해 12월 8억6000만원에 손바뀜했다. 이를 감안하면 낙찰자는 직전 거래가보다 5000만원 이상 저렴한 가격에 사들인 셈이다.
여러 차례 유찰을 거쳐 감정가나 시세보다 지나치게 낮아진 물건은 유의해야 한다. 낙찰자가 임차인 보증금을 전액 인수해야 하거나 별도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다음달 20일 8차 매각기일을 앞둔 서울 중구 흥인동 ‘청계천두산위브더제니스’ 전용 92㎡는 일곱 차례 유찰 끝에 최저 입찰가가 감정가(13억원)의 21% 수준인 2억7263만원까지 하락했다. 최근 실거래가(14억8000만원·2021년 10월)와 비교해 10억원 이상 내려간 가격이다. 이 단지는 지하철 2·6호선이 지나는 신당역과 붙어 있는 역세권 주상복합이어서 정주 여건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도 수요자가 선뜻 응찰에 나서지 않는 것은 이 집에 대항력을 지닌 임차인이 있기 때문이다. 대항력이란 세입자가 제3자에게 주택의 임대차 계약 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이 주택에 세든 임차인은 전세권 등기까지 완료한 상태다. 경매 후 임차인이 배당받지 못한 보증금 잔액은 낙찰자가 전액 인수해야 한다. 주택을 3억원에 낙찰받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최대 8억원의 전세 보증금을 추가로 부담한다면 실질적인 낙찰가는 11억원을 웃돌 수 있다.
이상규 경매락 대표는 “지나치게 저렴한 경매 물건은 임차인 보증금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권리 분석을 꼼꼼히 해 낙찰자가 인수해야 하는 부담을 여러 차례 교차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