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결혼은 꿈도 못 꿔"…30대 교사 '딴마음' 먹었다 [이슈+]

입력 2024-01-27 10:00
수정 2024-01-27 21:09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지난 23일 구독자 115만여명을 보유한 유튜브 '미미미누' 채널에는 '고등학교 교사를 포기하고 한의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30대 초반 선생님의 사연'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은 교사들이 모인 온라인커뮤니티에 공유되는 등, 26일 기준 조회수 약 23만회를 기록하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영상에서 '3수' 끝에 서울대 사범대학에 진학해 2019년 정교사가 됐다는 교사 A씨(32)는 "서울에서 혼자 살기엔 교사 월급이 너무 팍팍하고, 이대로 결혼이나 집을 구매하는 건 꿈도 못 꿀 것 같다는 좌절감 들었다"며 "직업에 대한 만족도 현재 바닥으로 떨어져서 지난해 9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광풍'에 올라타기로 마음먹고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교권 침해 논란이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최근 일부 교사들을 중심으로 의과대학 진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눈에 띈다. 유튜브나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고민 끝에 의대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라거나, 의대 합격 소식을 알리는 교사들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추락한 교권 문제와 더불어 급여 등에 불만을 품은 20~30대 교사들을 중심으로 '교권 이탈'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한 20대 교사가 지난 3일 유튜브에 올린 '교사 의원면직 브이로그. 26세에 초등교사를 그만두고 한의대에 합격하다'라는 제목의 영상은 조회수 7만3000회를 기록하는 등, 전현직 교사들을 중심으로 의대 준비·합격 관련 영상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영상을 본 교사들은 "도전을 망설였는데 큰 자극제가 된다", "이게 교사의 현실이다" 등 반응을 보이며 공감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2025년 한의대 입학을 목표로 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는 30대 초등교사 B씨는 "교사는 하는 일에 비해 페이가 너무 적다"며 "수업도 열심히 하고 학교 업무도 열심히 해서 일하는 것 같아도, 또래 친구 중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이나 다른 직장인들에 비해 턱없이 페이가 작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럴 바엔 수능 다시 봐서 미래 보장이 확실한 한의사를 하자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힘들게 일해도 보상이 없는 구조라는 인식이 생겨나며 교사들 사이 전문직 선호 현상이 강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5년간 임용된 지 1년 이내에 여러 이유로 교직을 떠난 교사 수는 수백명을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문정복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중도 퇴직 교원 현황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교사 330명이 임용된 지 1년 안에 퇴직했다.


의대 전문 입시 전문반을 운영하는 관계자들도 "요즘엔 직장인뿐 아니라 교사들의 문의도 종종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C 의대 입시학원 관계자는 "학교 등 직장을 겸업하는 성인들은 보통 오후 5시에 시작하는 야간반을 듣는 경우가 많다"며 "수능을 미리 본 상태로 반 등록 문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상위권 대학 졸업 증명서를 제출하거나 방문 상담을 통해 합격할 가능성이 높은 의과 분야를 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한의대를 중심으로 교사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의대 경쟁률이 2020학년부터 2022학년까지 상승세를 이어왔으나, 지난해부터 내림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교육 전문기관 베리타스알파 조사 결과, 전국 12개 한의대 올해 정시 평균 경쟁률은 9.95대1로, 지난해 10.02대1보다 소폭 하락하면서 최근 5년간 최저경쟁률을 기록했다.

정용훈 의대 입시상담전문가는 "한의대가 전에 비해 가기 쉬워졌다는 인식이 생겨났는데, 공부하는 게 익숙한 교사들 입장에서 진입장벽이 낮다고 여기는 것"이라며 "의대, 수의대는 여전히 경쟁률이 높다 보니 결국 들어가기 수월한 한의대로 가서 전문적인 커리어를 유지하면서도, 직업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고수입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특히 요즘 교사들 말을 들어보면 '학교 가기가 싫어졌다'는 한탄이 많다. 지속 문제 제기되는 교권 침해 논란 때문도 있고, 주변에서도 교사한다고 하면 불쌍하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생겨난 탓도 크다"며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보람을 느껴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교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져서 딜레마에 빠진 교사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짚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