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녹아내린다"…주가 반토막에 개미들 '부글부글'

입력 2024-01-26 08:08
수정 2024-01-26 09:51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회사 빚을 갚기 위해 진행한 유상증자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이 이자 부담을 덜기 위해 앞다퉈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빚 갚기용(채무상환)' 목적의 유상증자 총 금액은 2조1556억원으로 전년(1조1155억원) 대비 93.2% 증가했다. 이 기간 전체 유상증자 금액이 7조2572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3321억원(15.5%) 줄어든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채무상환 목적의 유상증자 규모는 대기업들이 더 많았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채무보증 유상증자 총금액은 1조7835억원으로 전년 대비 141.3%나 뛰었다. 같은 기간 코스닥에선 빚 갚기용 유상증자 금액이 3316억원에서 3721억원으로 12.2% 늘었다.

지난해 채무상환 목적의 유상증자 규모가 크게 증가한 원인은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고금리 기조 때문이다.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에 고금리 국면이 장기화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들이 부랴부랴 대출을 조기상환해 이자비용을 줄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영업활동 만으로는 이자도 못 갚는 기업도 크게 늘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1674개 상장사 중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은 710곳이었다. 비중으로 보면 42.4%로 전년 대비 8.1%포인트 증가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것으로 1을 밑돌면 영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이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기업들이 영업활동이 아니라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주식 수가 늘면서 주식 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채무상환 목적의 유상증자는 통상 시장에서 부정적 재료로 인식돼 주가 하락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6월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CJ CGV는 자금의 일부를 빚 갚는데 쓴다고 밝힌 이후 주가가 1만131원에서 지난해 10월24일 장중 4670원까지 53.9%나 떨어졌다. 현재 겨우 5500원대를 회복했다.

같은 달 유상증자를 발표한 SK이노베이션도 상황이 비슷하다. 1조1400억원의 유상증자 금액 중 30%를 채무상환에 쓰겠다고 알리자 주가가 하루 만에 8% 급락해 주주들이 반발했다. 이에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주주서한을 보내 주주가치에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 주가는 당시 17만원대에서 현재 11만원대로 미끄러졌다.

정경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기업들이 자체 이익 창출에 기반한 자금이 아니라 주주가치 희석을 통해 채무를 상환하는 것은 시장에 실망을 주는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