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애물단지'였는데…尹정부 실세까지 나선 '착한 가게' [관가 포커스]

입력 2024-01-25 15:51
수정 2024-01-25 16:01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착한가격 업소 이용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엔 국내 9개 카드사와 여신금융협회, 새마을금고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같은 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선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전국 시·도 부단체장이 참석한 가운데 ‘2024년 시도 경제협의회’가 열렸다. 김 차관은 모두발언에서 “민생 회복을 위해 올해 착한가격 업소를 7000여개에서 1만개 이상으로 확대하고 민간 배달앱 배달료 30억원을 신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착한가격 업소를 활성화하겠다는 메시지가 같은 날 공교롭게도 연이은 회의에서 나온 것이다. 현 정부의 ‘최고 실세’로 꼽히는 이 장관과 이 원장이 관련 행사에 참석한 데 이어 예산과 세제를 주무르는 기재부의 김 차관까지 착한가격 업소 활성화를 선언한 것이다.


이유가 뭘까. 정부는 착한가격 업소가 물가 안정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착한가격 업소는 싼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로 2011년 도입됐다. 착한가격 업소는 음식 등 서비스가 지역 평균 가격보다 저렴하거나 가격 인하·동결에 나선 곳을 대상으로 심사해 지정한다.

이명박 정부 때 물가 안정을 목표로 야심 차게 시작했던 착한가격 업소 정책은 박근혜 정부 들어 점차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사실상 ‘찬밥 신세’였다. 도입 초반 대대적인 홍보로 착한가격 업소를 대거 지정했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는 인센티브가 워낙 적어 자영업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업소 주인들은 인센티브가 적기 때문에 가격 인상을 억제하면서까지 착한가격 업소 지정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착한가격 업소로 지정되면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종량제 봉투 제공, 상하수도 요금 감면 등 혜택을 받는 데 불과하다.

제도 도입 초반 착한가격 업소 대상 시상식까지 매년 열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주무 부처인 행안부 내부에서도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착한가격 업소와 관련 예산도 전액 삭감됐다. 착한가격 업소 활성화를 위해 각 지자체에 지원하려고 했던 특별교부세는 기재부 반대에 무산됐다. 물론 행안부의 자체적인 의지가 부족했던 것도 한몫했다. 이렇다 보니 담당 부서인 지역경제과 업무분장에서도 착한가격 업소가 사라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문 정부 때 행안부가 착한가격 업소 관련 보도자료를 낸 건 한 차례에 불과하다. 정책을 완전히 백지화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역점 추진할 수도 없는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작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착한가격 업소 정책 부활에 앞장서면서부터였다. 작년 말엔 이 장관이 직접 울산에 있는 착한가격 업소를 찾아 애로사항을 듣기도 했다. 착한가격 업소 제도가 도입된 이래 주무 부처 장관이 업소를 직접 방문한 건 이례적이었다.

정부는 올해 초 발표한 ‘2024 경제정책방향’에서 민생 및 물가안정을 위한 핵심 대책으로 착한가격 업소 활성화를 제시했다. 경제정책방향에서 착한가격 업소 활성화를 핵심 대책으로 제시한 건 사실상 올해가 처음이었다. 관련 예산도 늘어났다. 착한가격 업소 지원을 위한 국비 예산은 지난해 15억원에서 올해 18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와 별도로 민간 배달플랫폼을 통해 착한가격 업소 메뉴 배달 시 할인쿠폰을 발급하는 등 배달료를 추가 지원하는 데 국비 30억원이 배정됐다.

이날 열린 업무협약식을 통해 착한가격 업소에서 국내 9개 카드사 카드로 1만원 이상 카드 결제 시 1회당 2000원 할인 혜택이 제공되는 혜택도 추가됐다. 작년에는 신한카드로 결제하는 경우에만 혜택이 제공됐는데,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신한카드를 비롯해 롯데, 비씨, 삼성, 우리, 하나, 현대, KB국민, NH농협 등 국내 9개 카드사로 확대된 것이다.

행안부와 기재부는 착한가격 업소 정책이 다시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착한가격 업소에 대한 지자체 관심도 많기 때문에 올해 목표로 제시한 1만개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2011년 도입된 착한가격 업소 정책이 13년 만에 실효성을 발휘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적지 않다. 제도를 도입했을 때도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 정책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의 선의에 기댄 물가안정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착한가게라는 ‘이름표’를 붙이면서 자영업자의 이윤 추구까지 도덕의 영역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가격이란 높고 낮음이 있을 뿐인데 착한 가격과 못된 가격으로 나눈다는 취지 자체가 이윤 추구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착한가격 업소가 1만개까지 늘어나더라도 기재부가 기대하는 물가안정 효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착한가격 업소로 지정된 곳의 상당수는 영세 자영업자가 운영한다. 종업원을 두지 않고 ‘1인 사장’ 체제로 운영되는 곳도 적지 않다. 고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착한가격 업소가 가격을 낮춘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착한가격 업소로 선정되지 않은 곳은 나쁜 가게라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자영업자는 “가격을 낮추는 건 고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라며 “정부는 마치 이것을 착한 가게인 것처럼 포장해 장사를 봉사쯤으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경민/최해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