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실력파 판사들이 잇달아 법원을 떠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법관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법원의 재판 지연 사태가 더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법조계는 지난 1일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조만간 법원 정기인사와 새 대법관 임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사법부 개혁’의 수준을 판단할 가늠자가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서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강동혁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31기), 장준아 서울고법 판사(33기), 정기상 수원고법 판사(35기)가 최근 사의를 밝히고 한 대형 로펌으로 이직하기로 했다. 다음달 말 이후 변호사로 새 출발할 예정이다.
강 부장판사는 행정소송 분야 전문가다. 2002년 법관 생활을 시작해 부산지법 서울북부지법 서울중앙지법 법원행정처(양형운영지원단장, 사법지원심의관) 서울행정법원 등에서 근무했다. 장 판사는 서울북부지법 인천지법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등에서 민형사 재판을 두루 경험했다. ‘엘리트 코스’로 꼽히는 법원행정처 인사기획심의관도 지냈다. 정 판사는 서울서부지법 서울행정법원 수원지법 서울중앙지법 수원고법 등 핵심 법원에서 근무한 실력파로 조세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앞서 조세 판결에 정통한 도훈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33기)도 최근 사직서를 내고 세종으로 이직하기로 했다. 도 부장판사는 대법원 조세총괄재판연구관으로만 5년 근무했다. 이외에 서울고법과 주요 법원에서 적잖은 베테랑 판사들이 사의를 밝히고 김앤장과 태평양 등으로 옮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의 허리’ ‘법관의 꽃’으로 불리는 고법 부장판사들의 줄사표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고법 부장이 지방법원장이 되는 승진제도를 없애면서 벌어졌다. 2019년 1명이던 고법 판사 사표 제출은 2020년 11명, 2021년 9명, 2022년 13명, 2023년 15명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판사들의 이탈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 법관 인사가 ‘재판 지연’ ‘편파 인사’ 문제로 얼룩진 법원 분위기를 쇄신할지가 관건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고법 판사들이 법원장, 대법관으로 승진하는 모습을 봐야 밑에 있는 판사들이 열심히 일할 맛이 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법원은 26일 법원장 및 고등법원 부장판사·판사 인사에 이어 다음달 2일 전국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 법관 정기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 퇴임한 안철상·민유숙 전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후보 42명 가운데 선정된 7명의 명단이 25일 공개된다. 조 대법원장은 이 중 2명을 선정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게 된다.
김진성/허란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