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의 인기 TV쇼 ‘RAW’를 내년부터 10년 동안 독점 중계한다는 소식이다. 중계권료는 50억달러(약 6조7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의 스포츠 중계 계약 중 최대 규모로, 현재 RAW를 독점 중계하고 있는 USA네트워크가 맺은 5년 13억달러(약 1조7000억원)의 2배 가까운 금액이다. 이번 계약이 알려진 23일(현지시간) WWE 모회사인 TKO그룹홀딩스 주가는 20% 넘게 급등했다. 프로레슬링 같은 인기 콘텐츠가 가입자 유치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넷플릭스는 기대하고 있다.
“프로레슬링에선 경기력과 연기력 모두 중요하다.” WWE 여성 챔피언을 지낸 한국계 캐나다 프로레슬러 게일 킴의 말이다. ‘박치기왕’ 김일의 통쾌한 승리에 환호했던 1960~1970년대엔 다들 그게 진짜 경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스포츠 쇼’다. 승패는 미리 정해져 있고, 선수들은 각본과 스토리에 따라 자기 역할을 수행한다. 프로레슬링의 이런 극적(劇的)인 성격을 케이페이브(kayfabe)라고 하는데, 거구의 레슬러들이 링 위에서 충돌해도 큰 사고가 나지 않는 건 엄청난 훈련과 연습 덕분이다. 선수들의 뛰어난 경기력과 연기력에 관객은 짜고 치는 줄 알면서도 환호하는 것이다.
짜고 친다고 다 나쁜 건 아니다. 두 사람이 미리 약속한 대로 공격과 방어 동작을 주고받는 태권도 등 각종 무술의 약속대련은 실전 전(前) 단계의 중요한 연습이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격과 방어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액션영화의 격투 장면도 무술감독의 지도와 반복 연습이 없다면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갈등이 봉합 국면에 들어간 뒤에도 야권에선 “두 사람이 짜고 친 것 아니냐”는 ‘약속대련설’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약속대련에는 많은 경험과 연습이 필요한데 정치 초보인 두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출신 김종민 의원 말대로 그건 ‘정치 10단의 타짜’나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