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9조원에 가까운 혈세가 투입되는 달빛철도(대구~광주) 건설사업 특별법이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25일 국회 본회의 문턱까지 넘으면 ‘고추 말리는 공항’을 만든 공항 포퓰리즘에 이어 철도 포퓰리즘이 우후죽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사위는 총선용 포퓰리즘 법안인 달빛철도 특별법은 일사천리로 처리하면서 50인 미만 영세 사업자가 간곡히 호소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은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달빛철도 건설사업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 261명이 공동 발의한 특별법은 대구와 광주를 잇는 철도 건설사업을 예타 없이 추진하도록 했다. 영남·호남 간 지역 화합과 국토 균형발전이 명분이지만, 사업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업을 예타 없이 추진하도록 해 국가 재정 운용의 근간을 흔든다는 비판이 많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 신규 사업은 예타를 거치게 돼 있다. 하지만 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8조7110억원(복선 기준)의 달빛철도 건설 사업은 예타 없이 추진된다. 게다가 다른 지역의 철도 건설 특별법도 줄줄이 국회에 대기 중이어서 형평성을 들어 통과를 요구할 경우 재정 소요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포퓰리즘 법안은 통과됐지만 민생 법안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외면당했다. 83만여 개 50인 미만 영세·중소기업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해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국민의힘이 지난해 9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넉 달 넘게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만나 25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처리할지 논의했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오는 27일 법 시행을 앞둬 개정안을 논의할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지만 합의가 불발된 것이다. 민주당이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개정안 처리의 핵심 전제 조건으로 내걸면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법 시행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외청(外廳)을 설립하라고 요구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