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물과 같아 물길이 파인 모양을 따라 흘러갑니다. 그 모양을 선제적으로 만드는 것이 사람의 역할이지요.”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벤치마킹으로 성공한 한국 사회는 자유로운 상상을 하지 못하고 자기 검열을 한다”며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도전적인 질문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최근 이 교수는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난 세대)인 20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재기발랄한 상상을 통해 다채로운 미래를 그려보자는 취지에서다. 학생들이 제시한 다양한 미래 개념을 담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에서 <미래 관찰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펴냈다.
대표적인 개념이 이번 시리즈의 키워드이기도 한 ‘디지털 휴이넘’이다. 휴이넘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풍자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말을 닮은 종족으로, 높은 수준의 언어와 문화를 갖췄다. 인간처럼 묘사되는 ‘야후’는 약한 존재로 휴이넘을 숭배하며 살아간다. 기술과 인간 사이에 ‘관계 역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기성세대는 기계를 도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데 그치지만, 언어 발달 이전부터 스마트 기기를 접한 세대는 기술의 지배까지도 용인하게 된다”며 “이미 개인들은 영상 시청, 택시 이용, 소비 활동 등 삶의 많은 영역에서 부지불식간에 인공지능(AI)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에 대해선 “단순 기술이 아니라 기반 기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기반 기술은 노동 시장, 주택 구조, 도시 형태, 교통 체계 등 사회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기술이다. 증기기관,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 등이 대표적이다.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이 교수는 “AI는 오히려 인류의 선택지를 넓혀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과거에는 핸들이 무거워서 여성이 트럭을 운전할 수 없었지만 파워스티어링 등장 이후 약한 힘으로도 운전할 수 있게 됐다”며 “AI는 인류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발전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기반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과거 지식과 경험이 무너진다”며 “초·중·고교 12년 교육보다 평생학습이 훨씬 중요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평생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대학을 졸업하는 23세부터 진정한 학습을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가 말하는 평생교육은 AI 기술 자체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AI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다. 그는 “이미 AI를 채택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게 됐다”며 “제조업뿐 아니라 바이오, 문화 콘텐츠 등 모든 산업에서 AI를 어떻게 할용할지를 고민해 사회 전반의 ‘AI 감수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