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행태인 포퓰리즘을 정치 세력의 경제정책에서 찾는다면 현대 포퓰리즘의 원조는 20세기 중후반 남미의 좌파 정권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남미 포퓰리스트 정권의 거시경제를 선구적으로 연구한 루디거 돈부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세바스찬 에드워즈 UCLA 교수는 공동 저서 <남미 포퓰리즘의 거시경제학>에서 ‘남미 포퓰리즘’을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 위험을 무시한 채 소득 재분배만을 강조하는 경제적 접근으로 정의한다.
남미 포퓰리즘은 식민 통치와 초기 산업화를 거치면서 악화한 소득 불평등 때문에 발생했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브라질의 제툴리우 바르가스, 멕시코의 라사로 카르데나스, 에콰도르의 호세 이바라 등은 소득 불평등 퇴치를 기치로 20세기 중반 정권을 잡았다. 그리곤 중앙은행의 발권력과 정부의 재정적자를 기초로 대규모 보조금과 소득 이전 정책을 집행했다.
하지만 대중을 섬기겠다는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경제적 고통에 시달렸고 소득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남미 포퓰리스트 국가들이 포퓰리즘의 덫에 갇혔다는 점이다. 대중의 불만을 등에 업고 집권한 포퓰리스트 정권은 재정과 통화 팽창을 통한 재분배 정책으로 단기에는 성과를 보이지만 고물가, 자본 유출, 통화가치 급락, 공급 부족, 실업 등으로 이어져 결국 경제가 붕괴했다. 이에 따라 포퓰리스트 정권이 실각하면 새 정부가 들어서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는 일이 반복됐다. 경제 정상화 과정에서 긴축과 구조조정은 대중의 불만을 초래해 또다시 포퓰리스트 정권이 득세하는 형국이 된다. 포퓰리스트 정권의 실정으로 시작된 참담한 폐해를 경험하고도 다시 포퓰리스트 정권을 선택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21세기 들어 포퓰리즘은 2세대로 진화했다. 더 이상 남미에 국한하지 않고 미국(도널드 트럼프), 영국(보리스 존슨), 헝가리(오르반 빅토르), 이스라엘(베냐민 네타냐후), 폴란드(레흐 카친스키), 튀르키예(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등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정치적 이념도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단순히 소득 재분배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포퓰리즘을 연구하는 정치·경제학자들은 1세대와 2세대 포퓰리즘을 관통하는 특징으로 국민을 엘리트 계층과 일반 대중으로 가르고, 엘리트 계층을 착취와 부패의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반엘리트주의를 들고 있다.
물론 2세대 포퓰리즘도 근본 원인은 소득 불평등에 있다. 세계화와 자동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소득 양극화가 심화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대중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문제의 원인을 엘리트 계층과 이민자로 모는 정치 세력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 수는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문제는 2세대 포퓰리스트 정권도 재정적자를 초래하는 정책을 남발하고 있으며 시장원리에 반하는 경제정책과 보호무역 등으로 경제가 악화하는 현상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영국은 포퓰리즘의 결과로 여겨지는 브렉시트 이후 3년간 생산성이 2~5% 하락했고 연간 GDP(국내총생산)가 1%포인트 하락했다고 평가된다. 독일의 킬세계경제연구소에 의하면 포퓰리스트 정권이 집권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향후 15년간 GDP가 10%포인트 하락한다고 한다.
한국은 그간 남미 스타일의 포퓰리즘을 경계해왔다. 하지만 한국도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어 포퓰리즘의 촉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 싹은 어쩌면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재정 건전성과 국가 부채 문제는 이번 정부에서도 개선되지 않고 있고, 다분히 표를 의식했다고 느낄 만한 여러 정책이 총선을 앞두고 다투어 나오고 있다.
이제 포퓰리즘은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는다. 여야 모두 이번 총선에서 포퓰리즘적 공약을 경쟁적으로 제시할 개연성이 높다. 재원 마련은 무시하거나 축소한 채 재정적자를 초래하는 퍼주기식 공약을 남발하는 세력만이 포퓰리스트인 것은 아니다. 국민을 이편저편으로 갈라치기하고 표만 된다면 시장원리에 반하는 공약을 남발하는 세력도 경계해야 할 포퓰리스트다. 이들 공약은 한국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 차라리 그런 공약이 실천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